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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의병장 면암 최익현의 옷·신발 ‘국가민속문화유산’ 됐다

국가유산청, ‘면암 최익현 관복 일괄’로 5건 지정

‘면암 최익현 관복 일괄’ 가운데 단령 모습. 사진 제공=국가유산청




국가유산청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침략에 맞서 항일 의병운동을 이끈 의병장 면암 최익현(1833~1907)의 의복인 단령(團領)과 머리에 썼던 사모(紗帽), 허리띠인 삽금대(鈒金帶), 목화(木靴), 호패(號牌) 등 총 5건의 유물을 국가민속문화유산 ‘면암 최익현 관복 일괄’로 지정했다고 8일 밝혔다. .

국가유산청은 “ 이번에 지정된 5건의 관복 일괄은 19세기 후반기 복식 연구뿐 아니라 공예 기술과 재료 연구를 위한 실증적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단령은 최익현이 당하관이던 시기(1855~1870)에 착용한 것으로, 조선 후기 전형적인 당하관용 단령의 형태와 제작 양식을 지니고 있다.

또 사모는 양쪽 뿔에 얇고 성근 평직 원단이 겹으로 씌워져 어른거리는 무늬가 생기는 것이 특징인 당상관용 관모로서, 최익현이 당상관의 관직을 받은 1870년 이후의 것이다. 대나무와 한지로 모자 틀을 만들고 양쪽 뿔의 테두리에 가늘게 쪼갠 대나무를 사용한 점 등 조선시대 사모 제작 기술과 기본 재료를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이다.



삽금대는 개항기 조선에 소개된 셀룰로오스 나이트레이트(cellulose nitrate)로 추정되는 신소재로 제작한 모조(模造, 본떠서 만든) 대모(玳瑁) 재질의 띠돈을 부착하여 제작한 것으로, 19세기 말 공예 기술의 변화 양상을 대변하는 유물이다.

목화는 신의 밑창이 앞코까지 올라오는 형태에서 평평한 형태로 변화하는 과도기에 해당하는 1870~1880년대의 유물로서 이 시기 목화 제작 기술을 파악할 수 있다. 호패는 제작 연대(을묘, 1855년)와 최익현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착용자와 제작 시기를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자료 제공=국가유산청


면암 최익현은 구한말의 대표적인 우국지사다. 그는 1905년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늑약 체결에 반발해 전북 태인(지금의 정읍)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일제에 체포돼 대마도로 이송된 후 그곳에서 1907년 순국했다. 대마도 이즈하라항내 위치한 수선사에 순국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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