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중국·대만 등이 반도체, 인공지능(AI), 전기차 등 첨단 전략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전력망 확충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일본의 전력 회사들은 반도체 공장 및 데이터센터 증설에 대응해 2030년까지 전국적으로 대형 변전소 18곳을 신·증설하기로 했다. 도쿄전력은 2027년까지 4700억 엔(약 4조 3000억 원)을 투자해 송전망을 확대할 계획이다. 규슈전력과 훗카이도전력도 각각 TSMC의 구마모토현 공장, 라피더스의 지토세 공장 신설에 대비해 변전소를 새로 짓기로 했다. 중국은 올해 7월 향후 6년 동안 8000억 달러(약 1068조 원)를 전력망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대만은 2022년 9월 10년에 걸쳐 전력망에 총 5645억 대만달러(약 24조 원)를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반면 우리는 송전망 건설 인허가 절차 간소화를 골자로 하는 ‘국가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 제정을 뒤늦게 추진하고 있다. 동해안 일대 발전소에서 만들어낸 전기를 반도체 공장 등이 집중된 수도권으로 끌어오도록 송전망을 증설하는 ‘전기 고속도로’ 사업 또한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전력망 확충 법안은 별다른 쟁점도 없는데도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비협조로 표류하고 있다. 전기 고속도로 사업은 수도권 문턱에 위치한 하남시가 동서울변전소 옥내화 및 증설 사업안을 최근 불허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일부 단체와 정치권 인사들이 과학적 근거가 없는 전자파 괴담을 퍼뜨리며 변전소 건설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력망 증설을 위한 투자를 서두르지 않으면 우리 첨단 전략산업의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한전기학회장인 이병준 고려대 교수는 2050년까지 국내 전력망이 2.3배 더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정부가 조성하려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7개 첨단산업특화단지도 15GW 이상의 신규 전력을 공급받아야 한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시절 탈원전 정책으로 전력 수급난을 초래한 과오를 반성하고 이제라도 전력망 강화에 적극 협력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전력망 증설 과정에서 재산상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없도록 합리적 보상책을 마련해 지방자치단체 및 주민들을 설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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