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청문회 장면이다. 장관 후보자에게 “그러면 일제 강점기에 살았던 우리의 선조들은 국적이 일본입니까?”하고 고함치듯 질문한다. “일본이지요. 그걸 모르십니까?” 후보자의 대답에 질의자는 더 크게 고함 지른다. 고함에 덮여 추측할 수 있는 말은 “우리 선조들이 전부 일본 국적이라는 말입니까?...” 정도 였다.
이어 질의하는 국회의원은, 일장기를 지운 손기정의 사진까지 거론하면서, 당시 한국민은 어디까지나 한국민이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를 부정하는 김문수 장관 후보자를 질타한다. 헌법 전문에도 임시정부의 수립을 언명했으니, 당시 한국민은 임시정부의 국민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들 중에는 이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 국회의원에게 물어야 한다. “손기정이 베를린까지 갔었지요?” 국회의원이 대답을 안 한다. “대답하세요! 국민의 질문입니다” 국회의원 그래도 대답을 안한다. “그의 여권은 어디서 발급된 것입니까?” 대답이 없다. “대답하세요! 이 질문은 국민이 하는 질문입니다.”
손기정의 여권이 언론에 소개된 바가 없으니 보았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 국민은 누구나 그의 여권이 상해 임시정부의 발행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 정도 상상으로 끝내자.
이날 논쟁에는 “일본인과 일본국민”이라는 말장난이 숨어있다. 아마도 질의한 국회의원에게는 말장난이 아니었을 것이다. 장난이라는 말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진지했으니까. 그는 “일본인과 일본국민”이라는 개념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 국회의원은 “너는 손기정의 여권을 본적이 있느냐”면서 “여권을 보지도 않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느냐”고 반박할 지도 모른다. 20세기초 이승만은 여권 없이 미국무부가 써준 신분 확인의 종이 쪽지를 들고 소련을 비롯해 유럽의 국가를 방문했었다. 공항 검색대에서 그는 당당하게 주장했을 것이다 자신이 무국적자임을. 그는 일본인도 아니었고 한국인도 아니었다. 손기정도 임시정부 메모를 들고 다녔을까?
나는 전공 분야가 달라 자신이 없다. 그러나 “한국 여권이 없었으면 한국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장관 후보의 부모님은 일본국적인이었고 그 국회의원의 조부모도 일본국적이었다. 장관후보자의 말대로 “나라가 없는데 어떻게 국민이 있습니까?“는 맞는 말이다. 그 생방송을 보던 시청자들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지금 한국의 대중은 상식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격렬한 정치적 이념 아래 생각한다.
그 국회의원의 머리 속의 대중은 그런 격렬한 대중이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 수립이 임시정부에 의한 것이냐, 1948년의 한국 정부에 의한 것이냐“의 격렬한 이념 논쟁 때문에, 그는 “일본인종이냐? 일본국적이냐?”의 두 의미 혼동에 빠져 있었고, 빠져 있는 대중만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인종적으로 일본인이냐? 국적으로서 일본인이냐?”의 두 질문은 전혀 다른 얘기다. 누구나 아는 일이다. 구태여 둘의 차이를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처럼 일부 국회의원들은 자신을 지지하는 딸들만 생각한다. 문제는 이 딸들만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아들들도 그러니 말이다. 앞으로 우리는 이 여남들이 어떤 대중적 실체인가를 탐구해야 한다. 더불어 그 대중을 상대로 하는 정객들의 대중 개념까지 탐구해야 할 것이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약력]서울대 명예교수 [저서]시와 리듬(1981, 개정판 2011), 음악을 본다(2009), 세계의 음악(2014) 등 [번역]기호학 이론(U. Ecco, 1984), 서양음악사(D. J. Grout,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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