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김재천 칼럼] 의료개혁, ‘불편한 진실’과 ‘애정남’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尹, '애매한 것 정해주는' 역할 자처했지만

낮은 지지율등 추진력 약화, 개혁 난관 봉착

의대증원 보단 지역·필수 의료 확충 중점

밀어붙이기 아닌 국민 공감 얻기 주력해야





코미디 프로 ‘개그콘서트’가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을 때가 있었다. 필자도 즐겨보고는 했는데 그중 ‘불편한 진실’과 ‘애정남’이라는 코너를 제일 좋아했다. ‘불편한 진실’은 개그맨 황현희 씨가 사회적 이슈나 일상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불편한 진실을 그만의 독특한 개그 스타일로 폭로하면서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예를 들어 정치인들이 공적인 자리에서는 나라를 위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발언하지만 뒤로 돌아서서는 바로 사익만을 좇는, 그런 불편한 진실이다.

‘애정남’은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의 줄임말이다. 개그맨 최효종 씨는 일상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애매한 상황을 본인 나름의 기준을 제시해 정리해줬는데 그 기준이 다소 엉뚱하기는 했지만 일견 수긍할 수 있었기에 많은 웃음과 함께 공감을 자아내기도 했다. 지하철에서 할머니와 임산부가 동시에 서 있다면 누구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하나. 최효종 씨는 임산부에게 먼저 양보해야 한다면서 애매한 상황을 유머러스하지만 명쾌하게 정리해줬다. 할머니가 섭섭해할 수는 있겠지만 임산부가 서 있는 것이 더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나름 과학적인 이유를 제시한다.

지금은 고인이 된 류석진 전 서강대 교수가 일전에 필자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 같은 교수들이나 언론인들은 ‘불편한 진실’만 얘기하면 되지만 정치인들은 ‘애정남’의 역할을 해야 해, 그래서 정치가 훨씬 더 어려운 거야.” 지금 와서 생각해봐도 너무 적절한 비유인 것 같다.

불편한 진실을 들춰내는 데만 익숙한 교수가 애매한 상황을 정리해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는 자리에 앉을 경우 그런 상황을 정리하지는 못하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해결책만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산도 좋고 물도 좋은’ 곳은 드물다. ‘정자까지’ 좋은 곳은 정말 드물다. 그렇다면 산이나 물 아니면 정자를 우선 기준으로 제시하며 애매한 상황을 정리하는 ‘애정남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한 의사가 지금 한국 의료계의 문제를 ‘방기곡경(旁岐曲徑)’으로 표현한 기억이 난다. ‘방기곡경’이란 옆으로 난 샛길과 구불구불한 길을 뜻하는데 정도(正道)로 가지 않고 그릇된 방법으로 사익을 추구하다 발생한 난맥상을 비유적으로 일컬을 때 쓰는 말이다. 방기곡경의 난맥상에 정작 의료 인력은 태부족한 상황이 발생했고 지방 의료 서비스는 계속 낙후돼가고 있었다. 한국의 의사 수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적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3.7명인 데 반해 한국은 2.1명에 불과하다.

그동안 한국 의료계의 불편한 진실을 지적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 누구도 애정남의 역할을 하지 않았다. 의료계의 문제는 한 올 한 올 실타래 풀 듯이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쾌도난마와 같은 해결책이 필요하다. 오직 정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의 이전 정부들은 임무를 방기한 셈이다.

윤석열 정부가 불편한 진실을 시정하기 위해 애정남의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지만 의료 개혁안은 큰 난관에 부딪혀 있는 상황이다. 충분한 숙의 과정을 통해 국민적 공감대를 더 확보하고 개혁을 추진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의대생 증원보다는 지역의료나 필수의료 확충안에 우선 중점을 둔 개혁안이 더 큰 공감을 자아냈을 것 같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윤석열 정부가 개혁안을 추진할 수 있는 ‘정치적 근력’이 매우 약하다는 것이다. 30% 남짓한 국민 지지율로는 이런 개혁안을 완수하기 어렵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금융 개혁을 추진할 당시 지지율은 80%를 상회하고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 브리핑 후 기자회견을 하던 중 “여러분, 정부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라며 격정적으로 토로했다고 한다. 의료 개혁은 시대적 과제고, 정부가 애정남의 역할을 해야만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검찰 수사하듯이 거칠게 밀어붙여서 될 일 같아 보이지 않는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