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셋을 키우다 보면 가장 큰 걱정거리는 입시다. 한국의 대입 경쟁은 가히 전쟁 수준이다. 냉혹한 서열 구조에서 한 단계 위로 가려는 복마전이다. 이 틈새에서 사교육 산업의 살을 찌운다. 불황에도 학원에는 돈이 몰린다. 내 아이만 뒤처지는 게 아니냐는 불안이 사교육 호황의 연료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을 새삼 거론한 것은 최근 읽은 보고서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7일 공개한 ‘입시 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 방안’이다.
보고서를 보면 2007~2023년 사이 고교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연간 4.4% 늘었다. 지난해 사교육을 받은 고교생의 학부모는 가계 소비지출의 19.6%를 학원비에 쏟아부었다. 지출의 5분의 1을 학원 계좌로 송금하는 사회가 건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 뼈아픈 대목은 격차다. 월 소득 800만 원 이상의 고소득층은 월 소득 200만 원 미만의 저소득층보다 월평균 사교육비를 2.6배 많이 썼다. 소득의 양극화가 기회의 양극화로 번진 셈이다. 기준점을 지역으로 바꾸면 어떨까. 서울의 1인당 사교육비가 읍면 지역보다 1.8배 많았다. 서울, 특히 강남 3구의 상위권대 진학률이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9.6배나 높았다. 부모가 돈이 많고 유명 학원과 가까이 살수록 좋은 대학에 간 것이다.
한은 보고서가 제안한 대안은 ‘지역 비례 선발제’다. 토론할 가치가 있는 대안이지만 즉각 실현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비례’라는 단어가 주는 괜한 거부감도 있다. 당장 제도를 바꾸기 어렵다면 주어진 제도하에서 변화를 모색하는 것도 실력이다. 그런 뜻에서 서울시의 교육 사다리 정책인 ‘서울런’의 성과는 눈여겨볼 만하다.
서울런은 취약 계층 가구의 6∼24세에게 유명 온라인 강의와 ‘1대1’ 멘토링을 무료 제공하는 정책이다. 서울연구원 조사에 의하면 서울런 회원 중 사교육비 지출이 감소한 가구는 42.1%다. 이들 가구에서 월평균 사교육비는 25.6만 원 줄었다. 대학 합격자를 분석한 결과도 고무적이다. 부자 동네에 치우치지 않고 자치구별로 비슷한 비율(1~6%)의 합격생을 배출한 것이다.
숙제도 있기는 하다. 현재 서울런의 대상은 중위소득 60% 이하 가구와 국가보훈 대상자, 북한 이탈 주민 자녀 등이다. 격차 해소 효과가 커지려면 대상이 확대돼야 한다. 아직 사회보장협의회 문턱은 넘지 못했으나 가능하다면 중위소득 85% 이하 및 다자녀 가구로 수혜 대상을 늘리고자 한다.
혹자는 서울런이 ‘공교육 중시’ 원칙을 어겼다고 비판한다. 그렇게 말하는 이들은 가난한 집 아이가 기회를 잃었을 때 무엇을 했나. 명분만 앞세워 사태를 방치하기보다 가능한 일을 실천하는 것이 책임 행정이다. 그것이 약자와 동행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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