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허가를 받아 놓고 아직 착공하지 못한 물류센터 부지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지난 한 해 동안 건축허가를 받은 물류센터 사업장 가운데 무려 95%(1127만 2727㎡)가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했다. 공사비와 금융비용이 치솟은 데다 코로나19 이후 물류센터 공급이 급증하면서 자금 회수가 어려워진 탓이다.
4일 부동산 서비스 기업 젠스타메이트에 따르면 2021년 이후 건축 허가를 받은 뒤 아직 착공에 들어가지 않은 물류센터 규모는 상반기 기준 2743만 8016㎡(약 830만 평)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짓기만 하면 돈이 되던 부동산 활황기에 토지를 고가에 사들였지만 이후 금리가 오르고 공사비가 치솟자 수익성이 뚝 떨어진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일례로 시행사 우현은 평택시 포승읍 방림리 인근에 지하 1층~지상 3층, 연면적 4만 2250.62㎡ 규모로 개발하던 혼합물류센터 사업을 포기하고 토지를 매각 중이다. 2022년 건축허가를 받아 금융권으로부터 777억 원 규모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조달과 시공사 선정까지 완료했지만 이후 조달비용이 급등하고 공사비가 치솟는 등 사업 여건이 악화된 영향이 컸다.
우람도 인천시 남동구 고잔동 물류부지에 지하 1층~지상 10층에 달하는 복합물류센터를 짓기 위해 2021년 10월 건축허가를 받았으나 지난해 토지와 시행법인을 통째로 시장에 내놨다. 금융권으로부터 조달한 PF자금 원금만 1160억 원이 넘는 만큼 1400억 원에 매각을 타진했지만 매수자는 아직 없는 상태다.
시행사나 건설사가 돈을 조달해 겨우 공사를 마치더라도 손에 쥐는 현금은 크게 줄었다. 젠스타메이트에 따르면 수도권에 소재한 상온 물류센터의 ㎡당 거래가는 2022년 202만 원까지 올랐다가 2023년 191만 원을 거쳐 올해 상반기 175만 원까지 떨어졌다. 임차인이 많지 않은 저온 물류센터의 경우 이보다 더 가파르게 하락해 △2022년 346만 원 △2023년 336만 원 △2024년 269만 원으로 2년 새 22%나 내렸다. 이마저도 매수인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 시행사 대표는 "임차인을 미리 잡아놓고 매수인과 공사가 끝나면 매각하겠다는 '선매입' 약정을 한 경우가 아니면 거래가 대부분 안 되는 분위기"라며 "이제는 애초에 PF대출 실행 시에도 대주단이 선매입 약정을 요구해 자금을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나마 거래가 이뤄진 물류센터는 책임 준공 약정을 걸거나 연대 보증을 선 시공사가 직접 사들인 사례가 대부분이다. PF대출이 연체되는 등 개발사업을 이어가지 못하는 사업장이 늘어나자 공사비 회수가 어려워진 시공사들이 현금 대신 자산을 떠안은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HIVE 군량’ 물류센터다. 시행사인 SPC군량물류가 파산 신청을 하면서 시공사인 DL건설이 1220억 원 규모의 연대 보증 채무를 상환하고 소유권을 이전받았다.
자금회수가 어려워지자 물류센터 개발 시장에도 찬바람이 이어지고 있다. 전국의 물류센터 건축허가는 △2022년 1752만 661㎡(약 530만 평)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가 △2023년 1180만 1653㎡(약 357만 평) △2024년 상반기 323만 9669㎡(약 98만 평)으로 쪼그라들었다.
시장이 급격하게 축소되면서 업계에서는 추후 물류센터 공급 위축마저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부동산 개발업계의 한 관계자는 "PF대출 때 시행사의 자본금을 요구하는 등 개발사업 전체가 어려워진 가운데 특히 자금회수가 쉽지 않은 물류센터를 신규로 추진하려는 곳은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기존 건축허가를 받은 곳들도 이미 이자비용이 불어나 사업성이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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