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선진국 모임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원조국 모임인 개발원조위원회(DAC)는 5~6년에 걸쳐 공적개발원조(ODA)를 두고 동료 평가를 진행한다. 2010년 DAC에 가입한 한국은 2012년과 2018년, 그리고 올해까지 세 번의 동료 평가를 거쳤는데 그때마다 들은 지적이 있다. 수십 개의 부처와 기관으로 쪼개져 추진되는 ‘분절화’ 때문에 기껏 ODA를 해놓고도 성과를 극대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글로벌 중추 국가’를 기치로 내걸면서 한국의 ODA 예산은 3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었다. 정부의 강력한 긴축 기조로 적잖은 예산이 줄줄이 잘려나가던 각 부처나 공공기관 입장에서 ODA는 금맥인 셈이었다. 자연스럽게 모든 부처와 기관이 ODA 사업에 뛰어들었고, 이름만 다른 같은 사업이 급증했다.
국무조정실에 따르면 올해 ODA 예산 6조 2629억 원은 46개 기관에서 1976개 사업으로 쪼개져 집행되고 있다. 한 개 사업에 평균 31억 7000만 원이 투입되는데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개발원조 사업 하나가 ‘강남 아파트 한 채만도 못하다’는 지적이 나왔을 정도다.
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모르지는 않는다. 내년 예산 요구액 6조 7972억 원을 발표하며 집행 기관을 46개에서 41개로 줄이고 사업 수 역시 1976개에서 1936개로 소폭 줄였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ODA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가장 큰 차이는 사업 주체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다른 ODA 선진국은 대부분 원조 주체가 일원화돼 있다. 호주와 덴마크 등은 외교부가 100% 예산을 집행한다. 미국 역시 시행 기관 13곳 모두 정부 부처로 국제개발처가 전체 사업 중 56.7%를 맡고 국무부와 보건부가 17.4%를 담당한다. 일본에서는 일본국제협력단(JICA)이 약 77%, 외교부가 약 19% 등 대부분의 ODA 예산을 두 기관이 도맡아 집행한다. 분절화로 일어나는 원조 비효율을 막기 위해서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상 원조는 기획재정부가 주관하고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이 집행하며, 무상 원조는 외교부가 주관하고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담당한다. 유상과 무상, 정책과 집행이 모두 분리돼 있다. 내년도 기관별 ODA 사업 예산을 보면 전체 6조 4948억 원 중 기재부 산하 수출입은행이 35.7%, 외교부 산하 KOICA가 23.4%, 외교부 본부가 19.0%, 기재부 본부가 5.2%를 차지했다. 이들 4개 기관을 제외하고도 지방자치단체까지 포함해 총 39개 기관이 1조 원 넘는 규모의 682개 사업을 진행한다.
기관이 쪼개져 있으니 사후 관리도 쉽지 않다. 기껏 구축한 시스템을 아무도 사용하지 않거나 사업 진척 여부와는 별개로 예산부터 집행했다는 감사 결과가 매년 빠지지 않는 지경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ODA 예산이 크게 늘어난 만큼 전반적인 구조 개혁이 한 차례 단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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