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양자컴퓨팅·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3D 프린팅 등 ‘신흥기술’ 분야에서 새로운 수출통제를 시작한다. 해당 분야에서 중국의 기술 굴기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움직임으로 읽힌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자국 수준의 수출통제 체제를 갖춘 국가에는 미국 정부 허가 없이 수출할 수 있는 예외 조항을 신설했는데 아직 관련 체제가 미흡한 한국은 포함되지 않았다.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5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통해 “오늘 동맹국들과 광범위한 기술적 합의를 이룬 임시 최종 규칙(IFR)을 발표한다”며 “IFR에는 양자 컴퓨팅, 반도체 제조 및 기타 첨단 기술과 관련된 통제가 포함된다”고 밝혔다.
양자 컴퓨팅의 경우 양자 컴퓨터와 관련 장비, 부품, 재료, 소프트웨어 및 양자 컴퓨터 개발 및 유지 관리에 사용될 수 있는 기술 등이다.
이밖에 첨단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와 슈퍼 컴퓨터에 사용할 수 있는 고성능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술인 GAA(게이트올어라운드) 기술이 포함됐다. 3D 프린팅을 뜻하는 적층제조와 관련한 장비, 소재, 기술 및 소프트웨어도 통제 대상이다.
앨런 에스테베즈 미 상무부 차관은 이번 조치와 관련 “우리의 국가적 수출 통제는 빠르게 진화하는 기술에 발맞추고 동맹국들과 협력할 때 더욱 효과적”이라면서 “양자 및 기타 첨단 기술에 대한 우리의 통제력을 조정하면 우리의 상대가 이런 기술을 개발하고 사용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BIS는 “첨단기술 통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제 협력”이라면서 글로벌 수출통제 체제 구축을 장려하기 위해 미국과 유사한 수출통제를 도입한 국가들에게는 미국 정부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수출통제 시행국'(IEC) 허가 면제를 신설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날 새로 지정한 24개 통제 품목별로 수출 허가가 필요 없는 국가 명단을 공개했는데 한국은 포함되지 않았다.
워싱턴DC의 한 외교소식통은 이와 관련해 “미국 정부와 유사한 수출통제 체제를 구축한 나라들을 대상으로만 허가 면제를 해주는 것으로, 한국은 현재 수출통제 체제가 완전히 구축되지 않아 일종의 ‘서류상 요건’이 맞지 않는다”면서 “한미 간의 이 문제를 긴밀히 협의하고 있으며, 한국으로의 관련 기술 수출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가 이처럼 수출통제 과정에서 미국 기준 모범국가들을 ‘그룹화’하기 시작하면서 아직까지 관련 제도를 확정하지 못한 한국 정부의 부담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는 그간 물밑에서 한국이 대중국 반도체 기술 수출통제의 ‘구멍’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출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앞서 수출통제 근거 법률인 대외무역법을 개정해 향후 미국 주도의 다자 수출통제체제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었지만,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등의 동참 여부는 검토 중이라는 입장이다.
한편 미국 내 전문가들은 이번 신규 수출통제의 핵심은 양자 컴퓨팅이라고 지목하며 이 분야에서 광범위한 규제가 이뤄질 것임을 예고했다. 미국 내 저명한 수출통제 전문가 케빈 울프는 “가장 중요한 규제는 양자 컴퓨터 및 관련 기술에 대한 것이라면서 “미국에서 양자 컴퓨터 개발에 종사하는 외국인 직원에 대한 새로운 보고 요건이 생겼다"고 전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