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의 ‘노인 빈곤국’, 세계 최고의 ‘노인 자살국’.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 5000 달러인 세계경제 13위 대한민국의 또 다른 이름이다. OECD가 발표한 ‘한눈에 보는 연금 2023(Pension at a glance 2023)’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빈곤율은 40.4%로 OECD 회원국 평균(14.2%)보다 3배 가까이 높았다. 보건복지부의 ‘2024 자살예방백서’를 보면 65세 이상 노인층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39.9명으로 전 연령층 가운데 가장 높았으며 OECD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노인 빈곤 예방을 위해서는 공적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으로 구성된 3층 연금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발표된 국민연금 개혁안은 아직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지도 못하고 있어 갈 길이 멀다. 개인연금도 문제가 심각하다. 보험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개인연금 가입률은 14%에 불과하며 특히 소득이 낮을수록 가입률이 급격히 떨어져 빈곤 대책으로 활용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퇴직연금은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위한 중요한 재원이다. 그러나 퇴직연금의 최근 5년간 수익률은 2%대로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2023년 조사한 적정 노후 생활비는 월 369만 원, 최소 생활비는 251만 원이다. 반면 2023년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은 62만 원이다. 이 간극을 퇴직연금으로 메워야 한다.
하지만 국내 퇴직연금의 87%(2023년 기준)는 원리금 보장형 상품으로 운용되고 있고 심지어 벤처펀드와 같은 대체투자 자산에 투자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대체투자는 위험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최근 5년간 청산한 벤처펀드의 수익률(내부 수익률 기준)은 9%를 웃돈다. 증시가 폭락한 1997년 외환위기(9.9%), 2008년 금융위기(1.2%), 2010년 유럽 재정위기(3.7%), 2020년 코로나 사태(8.9%) 모두 플러스 수익을 기록해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내 벤처펀드 역시 스타트업의 견조한 성장세를 토대로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청산된 벤처펀드 총 70개는 9%의 수익률을 기록했으며 상위 25% 펀드 18개의 수익률은 22.4%로 높은 수준이었다. 최근 5년 및 10년간 전체 청산 펀드 수익률은 각각 9.6%, 7.5%로 양호한 편이다.
은퇴자의 천국으로 불리는 미국에서는 여유로운 노후를 즐기는 ‘연금 백만장자’가 41만 명(2021년 기준)에 이른다. 겨울마다 플로리다·하와이 등 따뜻한 남부 지역에서 장기간 휴양을 즐기는 은퇴자들을 철새에 빗대는 ‘스노버드(snowbird)’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다.
이는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미국의 퇴직연금 ‘401(k)’가 은퇴자들의 버팀목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2023년 기준 401(k) 연금 자산의 86%가 비상장 벤처주식을 포함한 주식에 투자돼 있으며 10년 연평균 수익률은 10%를 넘는다. 미국의 또 다른 대표적인 연기금인 ‘캘리포니아공무원퇴직연금(CalPERS·캘퍼스)’ 역시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최근 사모펀드 투자 비중을 13%에서 17%로 늘린 바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퇴직연금 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한 호주의 슈퍼애뉴에이션이나 영국의 슈퍼펀드 모두 비상장 벤처주식 등 대체투자 자산에 투자해 수익률을 높이고 있다. 이러한 퇴직연금 선진국들의 10년 연평균 수익률은 6~8%로 은퇴자의 노후를 든든하게 책임지고 있다.
최근 중소기업 퇴직연금 의무화,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등 퇴직연금 제도의 확대와 수익률 제고를 위해 사회적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부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벤처펀드·사모펀드에 국민 모두가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등 수익률 향상을 위한 전향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국내에도 바실리 칸딘스키, 잭슨 폴록과 함께 잘 알려진 추상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는 노년을 가난에 시달리다 1970년 67세의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먼 곳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장수가 재앙이 아닌 축복이 되는 대한민국이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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