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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세포만 잡는 ‘방사성 미사일’ 국내 1호 환자 나왔다 [메디칼인사이드]

■국립암센터 비뇨기암센터

표적 방사성 의약품 '플루빅토'

국내 50대 환자 처음 투여받아

서울아산·분당차병원도 준비중

기대여명 2년뿐인 m-CRPC에

무진행생존기간 2배 이상 연장

정재영 국립암센터 비뇨기암센터 교수가 국내 최초로 '플루빅토'를 투여 받은 전이성 거세저항성 전립선암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사진 제공=국립암센터




“첫 날은 온 몸이 욱씬욱씬하고 얼얼하더라고요. 며칠 지나니 그런 느낌은 사라졌습니다. ”

4일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 비뇨기암센터. 휠체어를 탄 채 정재영 비뇨의학과 교수의 외래진료실를 받으러 온 A씨(53)는 “온 가족이 치료 경과가 좋기만을 기도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A씨는 지난달 27일 국립암센터에서 국내 환자 중 처음으로 전립선암 혁신치료제 ‘플루빅토’를 투여 받았다. 6주에 한 번씩 최대 6주기 동안 플루빅토 정맥주사제와 표준 항암요법을 병행하는 일정이다. 정 교수는 “임상시험 참여자가 아닌 전립선암 환자의 치료 용도로 방사성의약품을 투여하는 첫 사례인 만큼 장기와 골수 기능이 잘 유지되는지 면밀히 살피고 있다”며 “일주일 만에 혈액검사를 진행한 결과 골수독성 등 급성 이상반응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 전립선암 10~20%, ‘거세저항성’ 단계로 진행…대부분 2~3년 못넘겨


A씨는 51살 때인 2022년 전립선암 4기 진단을 받았다. 전립선암은 방광 아래에 위치한 호두 크기의 분비선인 전립선에 생기는 악성 종양이다. 주로 50대 이상에서 발병하며 고령, 가족력, 남성호르몬, 비만, 서구화된 식생활 등이 위험요인으로 꼽힌다. 국내에서는 고령화, 식습관 변화의 영향으로 발병률이 급증하는 추세다. 국가암정보센터에 따르면 2021년에만 1만8697명의 전립선암 환자가 발생해 남성암 중 폐암·위암·대장암 다음으로 발병률이 높았다. 학계에서는 소량의 혈액을 통해 전립선에서 생성된 단백질을 수치를 확인할 수 있는 혈중전립선특이항원(PSA) 검사가 보편화되면서 발견율이 더욱 높아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암세포가 전립선에서만 발견되는 1~2기 국소암은 5년 생존율이 95% 이상으로 높은 편이다. 반면 암세포가 전립선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장기까지 퍼진 4기는 생존율이 46%에 불과하다. 정 교수는 “전립선암 환자의 9~10%가량은 4기에 발견된다. 진단 당시의 병기가 환자의 예후에 직결되기 때문에 조기진단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방사성의약품 ‘플루빅토’의 제품 사진. 사진 제공=노바티스


전이성 전립선암은 남성호르몬인 안드로겐을 차단하는 호르몬치료를 시도한다. 문제는 초기에 80~90%의 반응률을 보여도 평균 18~24개월 후 재발한다는 점이다. 전체 환자의 10~20%는 5년 안에 남성호르몬 수준을 떨어뜨려도 더 이상 암세포가 억제되지 않고 진행되는 ‘거세저항성 전립선암(m-CRPC)’으로 진행된다. 많으면 한해 3000여 명이 전립선암의 종착지나 다름없는 m-CRPC로 진행되는데 약 90%는 뼈 전이를 일으켜 통증, 병적 골절 등의 합병증을 겪는다. 적극적으로 항암 치료를 받아도 기대여명이 2~3년에 그칠 정도로 예후도 나쁘다. 진단 당시 뼈에 광범위한 전이가 있었던 A씨는 쓰는 약마다 반응기간마저 짧았다. 2년간 4가지 항암치료에 실패한 그의 마지막 희망은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가 개발한 차세대 표적 방사성의약품 플루빅토였다.

◇ 정맥 혈관 타고 들어가 암세포 정밀 타격…DNA 절단해 사멸 유도




플루빅토는 방사성동위원소인 루테튬(177Lu)을 함유하고 있다. 이 방사성동위원소가 전립선 암세포의 전립선특이막항원(PSMA)에 선택적으로 결합해 암세포의 DNA를 절단하고 사멸시키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박소현 국립암센터 핵의학과 교수는 “방사선치료가 종양 부위에 외부 방사선을 조사해 암세포의 사멸을 유도한다면 플루빅토는 정맥 혈관을 통해 암세포에 치료 방사선을 전달하는 개념이다. 방사성리간드를 투사해 세포의 표적 단백질에 결합시켜 암세포에 집중시킨다는 뜻에서 ‘방사선 미사일 치료’라고도 불린다”고 소개했다.

방사성 리간드 요법의 기전. 사진 제공=노바티스


박 교수에 따르면 플루빅토는 임상시험을 통해 안드로겐 수용체 경로 차단 치료와 탁산 기반 화학요법에 실패한 m-CRPC 환자를 상대로 위약군대비 방사선학적 무진행생존기간을 2배 이상 연장시켰다. 또 질환의 진행 및 사망 위험이 60% 감소되고 전체 생존기간이 4개월 연장된 것으로 나타났다. 플루빅토는 2022년 3월 미국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은 지 2년 여만인 지난 5월 말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았다. 정 교수는 “실제 처방이 가능해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3명의 환자를 잃었다”며 “그새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고 했다. 플루빅토는 기존 치료에 실패한 전립선암 환자들에게는 혁신적인 치료법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진단용 방사성의약품을 이용해 전립선암 맞춤 양전자방출단층촬영/컴퓨터단층촬영(PET/CT)을 시행하고 암세포의 PSMA 과발현이 확인돼야 치료대상으로 선정될 수 있다. 무엇보다 전립선 암세포의 PSMA 발현 유무를 확인할 수 있는 진단용 방사성의약품 ‘갈륨(68Ga)-PSMA-11’을 원내에서 조제할 수 있는 의료기관은 전국적으로도 국립암센터·서울아산병원 등 10곳 남짓에 그친다. 현재로선 진단 및 치료가 제한적으로 이뤄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 스페인 공장서 생산돼 투여까지 ‘단 5일’…환자 맞춤형 주문제작 의약품


플루빅토 처방 후 실제 환자에게 투여되기까지 과정은 그야말로 007 작전을 방불케 한다. 박 교수는 “방사성동위원소의 반감기 자체가 매우 짧다”며 “환자별로 치료제 주문을 넣으면 스페인 소재의 특수시설에서 생산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복잡한 공정을 거쳐 생산이 완료되고 품질검사를 통과한 뒤에도 특수 포장, 항공배송, 통관, 운반의 과정을 거쳐 환자에게 투여될 수 있다. 더욱이 의료진이 의도한 효과가 발현되려면 이 모든 과정이 5일 내에 진행돼야 한다.

박소현(왼쪽) 국립암센터 핵의학과 교수와 정재영 국립암센터 비뇨기암센터 교수는 인터뷰에서 '플루빅토'의 임상 현장 도입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사진 제공=국립암센터


제약사가 일괄적으로 대량 생산해 공급하는 의약품과는 차원이 다르다보니 치료 전후 챙겨야 할 요소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환자가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전신 컨디션이 받쳐줘야 하고 회당 치료비용이 3000만 원을 넘는 것도 부담 요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의료진들은 난치암 환자를 위해 무언가 해줄 수 있다는 사실에 고무되어 있었다. 정 교수는 “방사성의약품이 다소 생소하게 여겨질 수 있으나 치료 당일에는 특별한 전처치나 격리가 필요하지 않다. 외래진료 후 당일 귀가도 가능하다”며 “대안이 없었던 전이성 거세 저항성 전립선암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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