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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품으로 돌아온 미군기지 ‘애스컴’ [인천톡톡]

1945년 광복 후 미 제24군수지원단의 앞글자 딴 명칭

캠프마켓 마지막 구역 반환으로 84년 만에 시민 품으로

1948년 애스컴 시티 전경. 사진제공=인천시




’애스컴 시티(ASCOM CITY)‘는 1945년 8월 광복 후 미 제24군수지원단(Army Service Command 24)이 부평에 있던 미군기지이다. 일본의 인천육군조병창과 군수공장 일대를 접수한 미군 부대의 명칭 앞글자를 따서 애스컴이라 불렀다. 애스컴은 부산 하야리아 부대와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미군기지인 셈이다.

이곳 애스컴은 주한민국 부대에 전쟁물자와 식량을 보급하는 보급창 역할을 했다. 1960년대 중반에는 미 해병대 군수지원사령부와 인천보충대가 설치되기도 했으며, 여기에 있던 121후송병원은 당시 국내에서 보기 힘든 최신 의료시설을 갖춘 병원으로 명성을 떨쳤다.

애스컴이 미군기지로 자리 잡으면서 생겨난 도시가 부평의 신촌이다. 한때 이곳에는 한국인 노동자와 ’양공주‘라고 불리는 수천 명의 여성들이 있었다고 알려진다. 미군을 상대하는 이들로부터 흘러나온 담배, 술, 통조림, 전자제품, 화장품 등이 서울 남대문상가와 동인천 양키시장, 부평시장 등에 유통됐다. 애스컴을 통해서 들여온 해외 팝송과 록음악은 이곳 신촌의 상징이 되면서 60년대 최고의 호황을 누리게 된다. 미군기지가 있던 부평이 서양음악의 근간으로 한 한국 대중음악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부평의 음악클럽이 한때 용산보다 많았다는 기록과 문헌들이 이를 입증한다.



하지만 애스컴이 있던 동안에 이곳에서는 살인, 강간, 폭력, 마약, 절도, 밀수 등의 범죄가 끊이지 않았다. 많은 사회문제를 야기한 애스컴은 1971년 미 7사단의 철수를 계기로 1973년 공식 해체된다. 이곳에 있던 55헌병대와 빵공장 시설 등만 애스컴의 일부인 캠프마켓(CAMP MARKET)으로 남게 된다. 이후 캠프마켓은 2019년 일부 구역 반환을 시작으로 2023년 12월 마지막 남은 D구역(23만㎡)까지 반환됐다. 1939년 일제강점기 조병창부터 주한미군기지로 사용된 이곳은 84년 만에 인천시민 곁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시는 오는 2030년까지 60만4938㎡ 규모의 캠프마켓 일대를 공원, 식물원, 제2의료원 등으로 개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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