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사이버 보안 회사 ‘퀀텀디펜스5e(QD5)’는 미국 국방부 당국자에게 암울한 의견을 전달했다. 이르면 2025년 전 세계가 ‘큐데이(Q-Day)’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였다. 큐데이란 현존하는 슈퍼컴퓨터보다 수십억 배 이상 빨리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양자컴퓨터 기술로 인해 기존의 모든 디지털 암호 보안 체계가 뚫리는 날을 뜻한다. 국가 안보 차원의 불안감이 확산되자 그해 8월 조 바이든 정부는 양자컴퓨터 분야 등에 대한 미국 기업·개인의 대중국 투자를 규제하는 법안을 발효했다. 그리고 이달 5일 미 상무부는 양자컴퓨터 기술 및 관련 장비·부품·재료·소프트웨어 등에 대해 광범위한 수출 통제를 가하는 ‘임시 최종 규칙(IFR)’을 발표했다.
미중 양자컴퓨터 경쟁은 패권 전쟁 양상을 띠고 있다. 미국 견제 속에서도 중국의 ‘양자 굴기’는 파죽지세다. 중국 안후이성 후베이시의 주요 도로인 윈페이루(雲飛路) 일대에는 양자컴퓨터 기업들이 즐비한 ‘양자 거리’가 있을 정도다. 해당 기업 중 번위안량쯔(本源量子)는 72큐비트 성능(2의 72제곱 개에 달하는 정보를 동시에 처리)의 3세대 양자컴퓨터를 독자 개발해 올해 1월부터 정식 서비스를 개시했다. 중국 양자컴퓨터 기술은 아직 미국보다 5년가량 뒤진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천문학적 투자로 빠르게 추격 중이다. 맥킨지컨설팅에 따르면 2022년 양자컴퓨터에 대한 중국의 공공 투자 규모는 153억 달러로 유럽(72억 달러), 미국(19억 달러), 일본(18억 달러)을 압도했다.
미중에 비해 한국은 크게 뒤처졌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올해 1월 공개한 양자컴퓨터는 20큐비트급에 불과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양자컴퓨터 관련 사업 예산은 올해 100억 원대에 머물러 있다. 국회는 지난해 10월에야 양자 과학기술 및 양자 산업 육성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이래서는 큐데이에 대비할 수 없다. 민관정이 한 팀으로 자본·인재·인프라를 대폭 확충해 양자컴퓨터 패권 전쟁 속에서 우리의 데이터 주권을 지켜야 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