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종의 기원 [김다은의 웹소설] <7회>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1859년 초판본 표지. 사진 제공=위키피디아




7. 기원이 없는 종의 기원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 단추를 낄 수는 없었다. 밤새워 준비한 질문들은 이제 소용이 없게 되었다. 혼자 문학작품을 읽을 때는 어떻게 읽든 문제 될 것이 없다. 작가의 의도도 상관이 없고, 읽고 싶은 부분만 읽거나, 마음에 드는 문장에 줄을 치거나, 혼자 해석하고 즐기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대담은 달랐다. 공적 대담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 대담은 『인공낙원의 문』의 작가를 추앙하는 전 세계 인간들이 영상을 통해 보고 들을 한국 국제도서전의 특별 기획행사였다.

아찔한 기분이 순간 찾아들었다. 가장 자신 있는 영역에서 허방을 디딘 심정이었다. 문학작품을 제대로 논하려면 작품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독자가 밖에서 열쇠로 열고 들어가서 작가를 만나거나, 작가가 안에서 열어주며 독자를 초대하는 방식이어야 했다. 나는 『인공낙원의 문』을 열 수 있는 두 번의 기회를 잃었다. 표지 문구를 이해하지 못해 스스로 문을 열지 못했고, 그 사실을 솔직하게 알리지 못해 작가가 문을 열어줄 기회를 놓쳐 버렸다.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했다면, 저 순진한 얼굴을 한 작가는 작품을 한국에 더 많이 팔기 위해서라도 기꺼이 알려주었을 것이다. 내가 알면서도 일부러 질문을 던졌다고까지 생각했을 것이다. 사회자나 대담자는 청중이나 관객을 위해 알면서도 모르는 척 대신 물어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부지불식간에 표지 문구의 출처를 안다고 나는 말해버렸다. 나는 내 오만함에도 화가 나기 시작했다. 작가가 독자들에게 직접 알려줄 기회도 차단해버렸으니 결코 좋은 대담자가 아니었다. 내가 표지의 모순적인 문구를 이해했다는 전제 하에 작가는 대화를 진행했다. 다른 독자들도 그 정도는 이해한다고 여긴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 정도’를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이다. 지금 솔직하게 번복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여태 녹화된 내용과 대화가 맞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담을 넘어보자는 심정이었다. 순간, 머리를 치는 것이 있었다. 문득 세상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는 책이 다윈의 『종의 기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읽지는 않더라고 전 세계 사람이 모른다고 말할 수 없는 책이다. 우리나라 초등학생들도 아는 내용이었다. 표지의 모순적인 문구가 다윈의 ‘종’과 관련된 것이라는 근거없는 확신이 올라와서, 나는 즉석에서 떠오른 질문을 던졌다.

“메종에서 키우는 ‘푸른 감자’로 다윈의 종을 건드려보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요?”

화면 속 작가의 눈동자가 한없이 커지는 것을 먼저 보았고, 이어 그의 대답이 들렸다.

“오! 그렇게 연결할 수도 있겠습니다. 다윈의 종은 생명이 아니라 ‘죽음’의 종으로 연결된 이론이니까요.”

작가의 반응이 반가웠다. 표지 문구를 다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작가가 스스로 그 의미를 말하도록 유도하면 될 것 같았다. 최근에 다윈의 자필 원고가 일부 발견되어 세상이 떠들썩했다. 그 자필 원고는 폐지로 버려지거나 자녀의 그림 낙서나 문제풀이 종이로 사용되었다가 발견되었다. 나는 작가의 의도를 더욱 정확하게 알기 위해 다시 확인했다.

“다윈에 따르면 척박한 환경에 적응한 생물만 진화한다니, 경쟁하다가 지면 사라질 수밖에 없는 다윈의 이론은 철저한 세상의 경쟁 논리이고 죽음의 질서에 부합한다는 뜻이군요.”

“맞습니다. 다윈에 따르면 인간도 다른 생물에 비해 특별난 존재가 아니지요. 우연으로 태어났고 인간은 앞으로 다른 경쟁자에 의해 사라질 수도 있다는 논리이니까 철저한 죽음의 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윈의 최근 기사에서 읽었는데, 자연선택은 곰같은 동물을 고래같은 동물로 점차 변화시킬 수 있다는 기록이 나중에 삭제되었다고 했습니다. 비평가들의 반박이 심해지자 그 뒤의 판본에서는 다 사라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부분을 다시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지워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살리건 죽이건 별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윈의 ‘종의 기원’은 과학이라는 허울을 쓰고 있을 뿐입니다. 자연선택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다윈의 종의 기원에 기원이 없으니까요.”



“어떻게 그렇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생명의 체계에서는 한 가지 종이 다른 종으로 결코 바뀔 수 없습니다.”

“종에서 종으로 바뀌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소설 속 푸른 감자는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땅의 성질 때문에 푸른 감자가 생겼다고 적지 않았나요?”

“소설 속 푸른 감자는 물론 상상의 산물이지만, 설령 그런 변화가 있다 해도 환경에 의해 ‘종’안에서 일어난 다양성으로 보시면 됩니다. 감자뿐만 아니라 자연의 생명체계는 태초에 이미 정해져 변할 수 없습니다. 생물의 종이 계속 변한다는 다윈의 논리는 생명의 기원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원숭이에게서 진화했다는 것도 거짓이라는 것이군요?”

“당연합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왜 우리는 한 번도 원숭이가 인간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관찰할 수 없었을까요? 천천히 진화해서?”

작가는 질문을 던지면서 약간의 코웃음을 쳤다. 나는 코웃음이 거슬려서 다시 겸손한 마음을 잃었다.

“그렇다면 수없이 사라지고 새로 생겨나는 동식물의 변화는 어떻게 설명하시겠어요?”

“죽음의 종이 아니라 생명의 종을 제대로 이해하면 됩니다. 표지 문구가 그 비밀을 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표지 문구의 출처는 다윈의 『종의 기원』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내가 아직도 표지 문구에서 헤매는 심정을 작가가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책상다리를 발로 차버리고 싶을 정도로 스스로 화가 났다. 수치심으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서경In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