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한국 시간) 다저스타디움의 기온은 섭씨 39도를 넘어가고 있었다. 경기 시작 시점을 기준으로 올 시즌 가장 더운 날이었다. 경기장을 더 뜨겁게 만든 것은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30·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한 방. 1대0이던 5회 말 1사에 오른쪽 담장을 훌쩍 넘겼다. 앞선 3회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안타로 출루한 뒤 견제구에 횡사했는데 바로 다음 타석에서 보란 듯 아치를 그린 것이다. 시속 187㎞로 137m를 날아간 대형 홈런이었다. 클리블랜드 가디언스를 4대0으로 이긴 다저스는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전체에서 유일한 승률 6할(0.601) 팀으로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선두를 굳게 지켰다.
MLB 최초의 50홈런·50고지를 향해 달리는 오타니는 이날로 46·46을 작성, 홈런과 도루에서 각각 4개만을 남겼다. 46홈런·46도루도 이미 최초 기록이다. 멀기만 했던 홈런 1위 에런 저지(32·뉴욕 양키스)도 이제 손에 잡힐 듯 잘 보인다. 남은 일정은 19경기. MLB 전체 홈런왕으로 자존심을 지키려는 51개의 저지와 5개 차로 다가선 오타니 간 ‘신들의 전쟁’이 클라이맥스다.
◇저지의 몰아치기는 언제쯤=오타니가 2경기 만에 홈런을 추가한 반면 저지는 3번 타자 중견수로 나선 이날 시카고 컵스전(1대2 양키스 패)에서도 홈런을 생산하지 못했다. 지난달 26일 콜로라도 로키스전 2홈런 이후 벌써 12경기째 침묵이다. 2주 전만 해도 저지는 오타니에게 10개 차로 앞섰다. MLB 홈런 1위는 물론 자신이 갖고 있는 아메리칸리그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62개)도 넘어설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2주 새 상황이 급변했다. 60홈런도 어려운 것 아니냐는 어두운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날 3타수 1안타 등 12경기에서 8안타를 쳤으니 최악의 슬럼프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슬럼프 조짐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오타니의 경우 올 시즌 가장 긴 홈런포 침묵이 9경기였다.
현지 네티즌들은 ‘러블앤크루의 저주’를 얘기하기도 한다. 러블앤크루라는 어린이 애니메이션에 저지가 등장한 직후부터 홈런포가 끊겼다는 것이다. 저지 본인은 조급해하지 않는 모습이다. “홈런을 치려고 억지로 노력하지는 않는다. 출루를 노리고 앞선 주자를 한 베이스 더 보내려고 할 뿐”이라고 했다. 에런 분 양키스 감독도 “뭔가 잘못된 부분이 있는 게 아니기에 곧 페이스를 찾을 것”이라고 믿음을 보냈다. 5월 한 달간 28경기에서 14개의 홈런을 몰아쳤던 저지는 지난달 6경기 7홈런을 쏟아붓기도 했다.
양키스 팀 입장에서도 저지의 페이스 회복이 절실하다. 82승 61패의 양키스는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선두는 지키고 있지만 2위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0.5경기 차로 쫓기고 있다.
◇그래서 올해 최고는 누구?=2022년 오타니와 저지는 역대급 최우수선수(MVP) 경쟁을 벌였다. 결과는 타율 0.311, 62홈런, 131타점을 올린 저지의 승리. 당시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소속의 ‘이도류’로 뛰던 오타니는 타자로 34홈런과 95타점, 투수로 15승에 평균자책점 2.33과 219탈삼진을 남겼지만 저지가 남긴 리그 최다 홈런 임팩트를 이기지는 못했다.
오타니가 다저스 이적과 함께 내셔널리그로 넘어가면서 저지와 MVP를 다툴 일은 없어졌다. 대신 현지 기자와 전문가들은 둘 중 누가 올해 MLB 최고인지를 두고 분분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 중 제프 파산 ESPN 기자는 저지의 우위가 당연하다는 의견을 내면서 오타니는 보비 위트 주니어(캔자스시티 로열스)에도 밀린다고 평가해 눈길을 끌었다. 가장 큰 이유는 오타니가 수비 공헌이 없는 지명타자라는 것. 위트 주니어는 유격수를 보면서도 MLB 전체 타격 1위(0.336)를 달린다.
김선우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오타니가 50홈런·50도루에 다다르는 순간 누가 최고냐는 논쟁은 무의미해진다고 본다. 역사상 그 누구도 못 해낸 일이기 때문”이라며 “물론 견실한 중견수 수비를 보여주면서도 60홈런을 바라보는 저지는 ‘리스펙트’를 받아 마땅하지만 50·50은 상징성부터 다르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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