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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법 증여, 도덕적 결함인가, 합리적 선택인가? [임채운 교수의 경제를 보는 눈]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연합뉴스




국회의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의 도덕적 결함을 지적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가 편법증여이다. 이번에도 장관, 국가인권위원장, 검찰총장, 경찰총장에서 대법관, 헌법재판관에 이르기까지 인사청문회에서 편법 증여 문제가 불거지지 않은 후보자가 거의 없다.

대부분은 부모인 후보자가 자녀에게 집이나 돈을 증여하는 경우가 해당된다. 부모가 자기 집과 돈을 자녀에게 주는 것이 왜 편법으로 비판받는가. 그건 내야 할 증여세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적발되는 사례는 자녀가 집 장만하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부모의 집을 시가보다 싸게 증여하거나 자녀의 집 매입 자금을 보태주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는 수십억 원대의 서울 강남 아파트를 장남에게 시세보다 싸게 판결로 드러나 곤욕을 치렀다. 대법관 후보자의 20대 딸은 아버지한테 증여받은 돈으로 용산 재개발 지역에 7억 원대 빌라를 사서 보유하고 있다. 경찰청장 후보자는 차남에게 돈을 빌려주며 편법 증여를 덮기 위해 차용증을 위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와 같은 고위공직자의 편법 증여는 부당하게 부를 대물림하는 ‘아빠 찬스’ ‘엄마 찬스’로 사회 불평등의 근원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더 나아가 나라를 망칠 특권 세습이라고까지 욕을 먹는다. 솔선수범해서 국가 기강을 지켜야 할 사회 지도층이 법을 위반하고 세금을 탈루하며 재산을 자식에 물려주려는 것이 만악의 뿌리인 것처럼 매도된다.

그러나 이처럼 비난하는 사람들 본인은 어떨까. 자신들은 자녀에게 집 사줄 때 솔선수범해서 세금을 다 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요즘 서울의 웬만한 아파트는 10억원이 넘는다. 서울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지난 6월 기준 12억1718만원이라고 한다. 이 정도 아파트를 자녀에게 상속하거나 증여하면 세금을 상당히 내야 한다.

우리나라 상속·증여 세제는 2000년 이래 25년간 변하지 않아 경제 규모의 성장과 개인 자산의 증가를 반영하지 못한다. 상속세 공제한도는 10억원으로 서울에서 아파트 한 채 보유한 중산층도 과세 대상에 포함된다. 증여세 공제한도는 더 낮다. 직계 자녀에 대한 증여는 10년간 합산 공제금액이 5000만원에 불과하다. 10억원 이상의 아파트를 증여하면 내야 하는 증여세가 억대이다. 이런 세금을 다 내고 자녀에게 집을 물려주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평생 월급쟁이로 살아온 공직자들에게 몇억 원의 증여세는 엄청난 부담이다. 그러니 편법 증여가 절세를 위한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 고위 공직자라고 해서 부동산 투기를 하여 떼돈을 벌거나 거액의 재산을 물려주면 당연히 부정축재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10~20십억원 정도의 집 한 채를 자녀에게 물려 주는 정도로 나라 망칠 중죄인 취급받는 것은 조금 억울할 것 같다.



‘아빠 찬스’ ‘엄마 찬스’라고 하지만 공직자로서의 특권을 이용한 것도 아니다. 평범한 부모라면 누구나 하듯이 자녀에게 자기 집을 하나 장만해 주는 정도에 불과하다.

부모가 자녀에게 집 하나 마련해 주는 것은 한국적 관행이다. 특히 결혼하는 자녀에게 전세라도 해주어야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처럼 인식된다. 자녀에게 집도 못 해주는 부모는 늙어서 대접도 못받는다. 그건 공직자뿐 아니라 대한민국 부모가 안고사는 업보이다.

더욱이 요즘처럼 집값이 천정부지로 쏟는 세상에서 자녀가 부모 도움없이 아파트 마련한다는 것은 미션 임파서블이다. 집이 없으면 결혼도 안하고 애도 못낳는다. 저출산에 인구 감소 시대에 청년에게 부모가 집을 마련해주는 것이 그처럼 잘못된 것이고 나라 망칠 특권 세습인가.

‘옳다, 그르다’의 가치 판단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다 하고 있는데 특별히 고위 공직자의 편법 증여만 콕 짚어 나라 망칠 특권 세습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과하다. 차라리 공직자를 포함해 많은 국민이 편법 증여하니 나라가 망할 것 같다라는 논설을 쓰는게 맞다.

사실 고액자산가는 편법 증여 논란에서 자유롭다. 세무사나 은행원의 도움을 받아 법인을 만들거나 재단을 세워 이미 합법적으로 증여해 두었다. 어설픈 중산층이나 법망 피해 집 한 채 증여했다가 걸려들어 망신당한다.

정부는 상속·증여세제를 현실화하기 위해 지난 7월 새로운 세제 개편안을 내놓았다. 아무쪼록 누구나 마음 편히 세금 다 내고 자녀에게 합법적으로 증여하여 나라 망칠 일이 없어지기를 희망한다.

서경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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