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의 선거 캠프가 ‘이민자들이 개와 고양이를 잡아먹는다’는 가짜뉴스를 지속적으로 퍼뜨리면서 미국 사회가 홍역을 치르고 있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이 같은 음모론 조장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트럼프를 추종하는 보수 진영은 불법 이민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는 재료로 이를 적극 활용하는 모습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2일(현지 시간) 애리조나주 투손 유세에서 지난 TV 토론에 이어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 이민자들을 정면 겨냥했다. 그는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를 콕 집어 “2만 명의 불법 아이티 이민자들이 5만 8000명이 사는 도시로 내려와 그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이곳은 아름다운 커뮤니티였지만 지금은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많은 아이티 이민자들은 현재 미국에서 ‘임시 보호 지위’를 부여받고 있다. 이는 대규모 자연재해나 내전에 시달리는 국가의 출신들에게 인도적 차원에서 미국에 임시로 체류할 수 있게 허용하는 것이다. 그들 중 상당수가 스프링필드에 정착했는데 지난해 아이티 이민자가 무면허 운전으로 낸 사고에 11세 아이가 사망하면서 이민자에 대한 혐오 기류가 확산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앞서 TV 토론에서 “아이티 이민자들이 주민들이 기르는 개와 고양이를 먹는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는데 이는 그 전부터 일부 우익 인플루언서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퍼뜨리던 음모론이다. 보수 단체인 터닝포인트USA 창립자인 찰리 커크는 8일 자신의 X(옛 트위터)에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 주민들은 아이티인들이 반려동물을 먹는 것을 봤다’는 게시물을 공유했다.
스프링필드의 상황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이날 시청과 학교 등 주요 시설에 테러 위협이 일어나 건물이 폐쇄됐고 시민과 학생들이 대피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스프링필드 당국은 ‘폭탄 위협’이 있었다면서 “스프링필드 출신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아이티 이민 문제와 관련해 당국에 불만을 언급했다”고 전했다.
극단적인 ‘이민자 혐오’를 부추기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전략이 이번 대선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된다. 그는 2016년 대선에서도 국경지대 장벽 건설, 이민자 추방 등의 공약으로 세를 불렸다. 공화당 일각에서는 중도층 표심 확장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트럼프 선거 캠프는 되레 음모론을 적극 활용하려는 모양새다. 백악관은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해 “지역사회의 삶을 파괴하는 오물을 퍼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편 대선 TV 토론 이후 실시된 전국 단위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5%포인트 앞서며 격차를 소폭 벌린 것으로 나타났다.
로이터통신·입소스가 이달 11일부터 이틀간 전국의 등록 유권자 14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오차범위 약 ±3%포인트)에서 해리스 부통령은 47%, 트럼프 전 대통령은 42%의 지지율을 얻었다. 모닝컨설턴트 여론조사에서도 해리스 부통령은 50%의 지지를 얻어 트럼프 전 대통령(45%)을 5%포인트 앞선 것으로 조사됐다. 토론 전 같은 조사에서는 해리스 부통령이 3~4%포인트 리드하고 있었다. 모닝컨설턴트 분석가들은 “토론의 성과가 해리스의 상승 모멘텀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