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이 모성에 대한 사회적 압력으로 ‘조용한 전쟁’을 치르고 있어요. ‘가임기’를 일종의 유효기간처럼 정해 놓는 사회적 인식에 대해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소설 ‘암캐’의 국내 발간과 함께 주목받고 있는 콜롬비아 소설가 필라르 킨타나는 최근 서울 종로구 JCC아트센터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가정을 완성한 ‘성공적인 모성’의 사례만 보여주면서 정작 이를 이루기 위해 여성들이 겪는 난임, 출산·유산의 고통 등 어려움은 조용히 감내하게 하는 문제를 공론화하고 싶었다”며 “계속해서 여성들이 겪고 있는 딜레마에 대해 다룰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대표작인 ‘암캐’의 배경인 콜롬비아의 바닷가 마을에 사는 주인공 다마리스는 사는 내내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애쓰는 인물이다. 결혼을 하고 주변에서 아이를 언제 낳을 거냐고 묻자 의무감으로 아이를 가지려는 시도를 한다. 임신 시도가 실패에 그치고 이 사실을 이야기하자 정작 주변 인물들은 대화를 피하며 극단적인 조치를 안내한다. 이마저도 통과 의례처럼 끝내자 그는 모성의 속박으로부터 풀려나 개를 키우기 시작한다.
다마리스의 이야기에는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 있다. “콜롬비아 하면 카리브해 지역을 떠올리기 쉽지만 태평양 연안의 외딴 정글 지역도 있어요. 상대적으로 보수적이죠. ‘가임기’에 해당하는 30대 때 칼리라는 도시에 살았어요.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다고 하면 ‘아닐 걸’하며 단정하거나 난임 문제 등을 숨기는 게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죠. 아이를 가지고 싶은 사람에게는 이러한 사회적 시선이 얼마나 ‘조용한 고통’으로 다가올지 느꼈어요.”
결국 마흔 이후에 아이를 갖겠다는 마음이 생겼고 다행히 어렵지 않게 마흔 셋의 나이에 딸을 낳을 수 있었다. 그는 “아이를 갖는 데 결정적인 시기인 ‘가임기’가 있다는 것까지 부인할 수는 없지만 마치 여성의 모성이 유효기간이 있다는 인식에는 반기를 들고 싶다”며 “가임기 논리가 얼마나 많은 여성들을 억압하고 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난임 치료 과정도 쉽지 않고 이를 정작 털어놓을 곳도 없어 소수의 여성들끼리만 조용히 쉬쉬하며 아픔을 공유하는 게 전부라는 설명이다.
22개국에서 번역, 출간된 그의 소설을 두고 미국과 유럽 문단에서는 ‘마술적 사실주의’ 문학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오해”라며 “주인공 다마리스가 난임 치료를 받는 장면은 마술적 요소가 아니라 콜롬비아에서 실제로 진행됐던 민간 치료법”이라고 말했다.
다음에 그가 쓰고 있는 작품은 ‘아버지의 부재 속 딸이 만들어가는 관계’를 소재로 남성들이 장악하는 상황에서 여성들이 느끼는 두려움을 다루고 있다. 그가 도전하는 것은 단순히 모성에 대한 억압의 시선만은 아니다. 아직도 사회 내에서 ‘여성은 예뻐야 한다’ ‘상냥해야 한다’ 등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분위기다. “여성들은 남의 평가에 더 익숙해지고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두 배 이상 노력하고 있어요. 이러한 억압 속에서 자유로워졌으면 좋겠어요.”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