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캐즘’이라는 보도로 떠들썩하다. 캐즘(chasm)이란 본래 지층 사이의 틈으로 단절된 현상을 의미하는 지질학 용어다. 미국의 제프리 무어가 1991년에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이 개발돼 시장에 나온 뒤 대중화되는 과정에서 수요가 후퇴하거나 정체하는 현상을 의미하게 됐다.
전기차의 경우 환경친화적인 이미지를 선호해 구매에 나선 얼리어댑터들의 물결이 지나가고 대중화되는 단계에서 높은 초기 비용, 주행거리 제한, 충전 인프라 부족, 화재의 위험과 진화의 어려움 등 문제로 인해 소비자들이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면서 전기차 캐즘이 전세계적으로 시작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달 초 인천 청라에서 발생한 전기차 발화로 인한 지하 주차장 대형 화재 사고가 겹쳐 전기차에 대한 회의론이 캐즘을 가속화하고 있다. 그래도 전기차는 세계적으로 캐즘을 겪으면서도 대세 성장세는 여전하고 단지 예고됐던 조정기를 겪고 있는 셈이다. 리튬이온 배터리로 에너지를 저장하고 모터로 구동하는 배터리 전기자동차는 운행 시 공해 물질을 배출하지 않고 신재생에너지 기반의 전기를 사용할 경우 친환경적이고 기후위기 대응 무탄소 기술로 각광 받아 각 나라에서 온갖 혜택을 주고 보급을 장려해왔다. 그러나 전기차는 태생부터 여러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고온이 되면 폭발할 가능성이 있고 가격이 비싸며 에너지를 많이 담지 못해 장거리 운행을 하는 대형 상용차에 사용하기 어렵다. 또 충전 시간이 오래 걸리며 신재생 무탄소 기술로 전기 생산이 되지 않으면 친환경 의미가 퇴색된다. 기술 개발을 통해 많은 개선을 이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지원금이 없을 경우 높은 구매 가격과 오르는 전기 비용도 부담이고 충전의 불편함과 화재 불안감으로 인해 구매를 망설인다.
다른 공산품에도 그래왔듯 전기차가 캐즘을 이겨내기 위한 돌파 전략이 필요하다. 전세계적으로 하이브리드 자동차로 구매자가 옮겨가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하이브리드 차량도 배터리를 사용하지만 고효율 내연기관을 함께 사용해 충전과 화재의 걱정을 덜어낼 수 있고 경제적이다.
가장 많은 양의 전기차를 생산·판매하는 중국에서도 총 자동차 생산량 중 3분의 1이 전기차이고 요즘 시장의 주도권을 하이브리드 혹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가 이끌고 있다. 이런 양상은 일본과 유럽의 경우도 마찬가지이고 전환이 느린 편인 미국도 이 경향을 따라가고 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전기차 캐즘의 충격을 완화하면서 균형 잡힌 시장을 형성하며 전기차 마케팅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장기적으로 수소와 이퓨얼 등 탄소중립 연료의 등장을 고려하면 하이브리드 차량이 소형과 중형차 시장에서 전기차와 동반 성장할 수 있고 대형 상용차는 여전히 탄소중립 내연기관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차에게는 저가의 안전한 배터리 개발과 초기 차량 가격을 낮추기 위한 방법이 숙제이다. 캐즘을 이겨낸 전례들을 보면 혁신적인 기술 개발과 창의적인 마케팅이 관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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