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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 여성, 성소수자 억압으로부터 자유 … MZ 울린 전 세계 작가들의 관심사

작가들은 저마다 시대의 문제의식을 던진다. 이달 초 진행된 국제작가축제를 기념해 맞아 여성, 모성, 동성애 등 사회의 억압적인 시선을 새로운 시각으로 담아내는 전 세계 작가들이 진단하는 이 시대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자.

천쓰홍 작가 /사진 제공=민음사




‘귀신들의 땅’ 이어 ‘67번째 천산갑’ 통해 대만 MZ 울린 천쓰홍 작가

“위로 누나가 내리 일곱명이 있는 집에서 막내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딸에게는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 집이었죠. 아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도 불행합니다. ‘남존여비’ 사상이 지배적인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남자는 책임을 져야 하고 여성은 동등하게 존중받지 못해 양쪽에게 슬플 수밖에 없습니다.”

어릴 적부터 대만 사회에서 남성 성소수자라는 사실로 속을 끙끙 앓던 한 청년은 영화와 소설을 통해 구원 받았다. 하지만 소설을 쓰면 굶는다는 핀잔이 따라다녔다. 기자가 되어 독일 베를린에 가서야 처음으로 ‘온전히 혼자 있는 자유’를 느꼈다. 그는 비로소 자신이 자랐던 곳의 억압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대만계 소설가 천쓰홍의 이야기다. 그가 백색테러(1949~1987년) 당시의 대만의 시대상을 담아낸 전작 ‘귀신들의 땅’은 우리나라에서 1만5000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 한편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천쓰홍은 9일 서울 광화문 달개비에서 진행된 신간 ‘67번째 천산갑’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전작과 이번 작품은 모두 자유에 관한 책”이라며 “캐릭터들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유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배우와 작가로서 활동하는 그는 사십대가 되어서야 ‘귀신들의 땅’ 소설 집필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서른셋에 쓰기 시작했지만 그때는 쓰다가 중단한 적이 많았어요. 하지만 ‘이제 슬픔도, 뱃살도 충분히 쌓였구나’하고 때가 됐다고 느꼈죠.”

자전적 이야기를 담아내면서 해방감도 느꼈지만 아직도 그에게는 가족이나 동네 사람 등 가까운 독자들의 존재를 의식할 때마다 불편한 감정이 든다. 그는 “제 고향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두렵다”며 “성소수자이자 (반도체 산업이 주축이 된 대만에서) 문과를 졸업해 소설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위축되는 데서 예전에 해방됐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다”고 전했다. 실제로 대만은 2019년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지만 그렇다고 사회 전반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급변한 것은 아니라는 게 그의 단언이다. 십여년 전인 서른 살 당시 성정체 성을 공개한 뒤 공개 성소수자 작가인 그는 종종 살해 협박 메일도 받는다. 그는 “대만 같은 경우는 신체적 거리는 가깝지만 심리적 거리는 멀다”며 “한국도 비슷하겠지만 혼밥을 하는 선택조차 쉽지 않은 곳”이라고 강조했다.

역시 자전적 요소를 담은 이번 소설의 도입부는 “그와 그녀는, 파리의 여름이 끝나던 그날, 마침내 함께 잤다”라는 강렬한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언뜻 에로틱한 문장이지만 남성은 성소수자이고 여성은 이성애자로, 둘 사이에는 로맨스가 개입될 여지는 없다. 서로 다른 성적 지향을 가진 이성이 유독 남다른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관계를 중화권에서는 ‘게이미(gay蜜)’로 지칭한다. 어린 시절 한 광고 촬영 현장에서 만나 꿈 같은 단잠을 잔 이들은 연락이 끊긴 인생 대부분의 시간에게도 서로에게 특별한 관계로 남아있다. 이들은 어린 시절 함께 가려다 가지 못한 프랑스 낭트로 가는 여정에 동행하지만 결국 낭트에는 다다르지 못한다. 이 ‘다다르지 못함’은 천쓰홍에게는 중요한 지점이다. “내가 어딘가를 가고 싶어하지만 그럴 수록 유독 가지 못하는 곳이 있어요. 그게 인생인 것 같아요. 그때 남는 아쉬움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전하고 싶었어요.”

‘가임기로 정한 모성의 유효기간’ 문제의식 던지는 콜롬비아 작가 필라르 킨타나

소설가 필라르 킨타나


“여성들이 모성에 대한 사회적 압력으로 ‘조용한 전쟁’을 치르고 있어요. ‘가임기’를 일종의 유효기간처럼 정해 놓는 사회적 인식에 대해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소설 ‘암캐’의 국내 발간과 함께 주목받고 있는 콜롬비아 소설가 필라르 킨타나는 최근 서울 종로구 JCC아트센터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가정을 완성한 ‘성공적인 모성’의 사례만 보여주면서 정작 이를 이루기 위해 여성들이 겪는 난임, 출산·유산의 고통 등 어려움은 조용히 감내하게 하는 문제를 공론화하고 싶었다”며 “계속해서 여성들이 겪고 있는 딜레마에 대해 다룰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대표작인 ‘암캐’의 배경인 콜롬비아의 바닷가 마을에 사는 주인공 다마리스는 사는 내내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애쓰는 인물이다. 결혼을 하고 주변에서 아이를 언제 낳을 거냐고 묻자 의무감으로 아이를 가지려는 시도를 한다. 임신 시도가 실패에 그치고 이 사실을 이야기하자 정작 주변 인물들은 대화를 피하며 극단적인 조치를 안내한다. 이마저도 통과 의례처럼 끝내자 그는 모성의 속박으로부터 풀려나 개를 키우기 시작한다.

다마리스의 이야기에는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 있다. “콜롬비아 하면 카리브해 지역을 떠올리기 쉽지만 태평양 연안의 외딴 정글 지역도 있어요. 상대적으로 보수적이죠. ‘가임기’에 해당하는 30대 때 칼리라는 도시에 살았어요.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다고 하면 ‘아닐 걸’하며 단정하거나 난임 문제 등을 숨기는 게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죠. 아이를 가지고 싶은 사람에게는 이러한 사회적 시선이 얼마나 ‘조용한 고통’으로 다가올지 느꼈어요.”

필라르 작가는 결국 마흔 이후에 아이를 갖겠다는 마음이 생겼고 다행히 어렵지 않게 마흔 셋의 나이에 딸을 낳을 수 있었다. 그는 “아이를 갖는 데 결정적인 시기인 ‘가임기’가 있다는 것까지 부인할 수는 없지만 마치 여성의 모성이 유효기간이 있다는 인식에는 반기를 들고 싶다”며 “가임기 논리가 얼마나 많은 여성들을 억압하고 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난임 치료 과정도 쉽지 않고 이를 정작 털어놓을 곳도 없어 소수의 여성들끼리만 조용히 쉬쉬하며 아픔을 공유하는 게 전부라는 설명이다.

22개국에서 번역, 출간된 그의 소설을 두고 미국과 유럽 문단에서는 ‘마술적 사실주의’ 문학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오해”라며 “주인공 다마리스가 난임 치료를 받는 장면은 마술적 요소가 아니라 콜롬비아에서 실제로 진행됐던 민간 치료법”이라고 말했다.

다음에 그가 쓰고 있는 작품은 ‘아버지의 부재 속 딸이 만들어가는 관계’를 소재로 남성들이 장악하는 상황에서 여성들이 느끼는 두려움을 다루고 있다. 그가 도전하는 것은 단순히 모성에 대한 억압의 시선만은 아니다. 아직도 사회 내에서 ‘여성은 예뻐야 한다’ ‘상냥해야 한다’ 등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분위기다. “여성들은 남의 평가에 더 익숙해지고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두 배 이상 노력하고 있어요. 이러한 억압 속에서 자유로워졌으면 좋겠어요.”

내 경험 태워쓰는 소설 넘어서… 시차와 낙차 에너지 삼는 김애란 소설가

김애란 소설가 /연합뉴스


“소설을 쓰는 에너지의 종류가 바뀌었어요. 이전에는 경험이나 기억을 태워서 글을 쓰는 ‘화력 발전’이었다면 이제는 경험의 시차, 위치나 위상의 변화로 인한 낙차를 에너지 삼아 ‘수력 발전’으로 이야기를 만들게 됐어요.”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 문단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선보이는 김애란 소설가가 13년 만의 장편 소설로 돌아왔다. 21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이중 하나는 거짓말’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작가 김애란은 “시작했던 연재를 중단한 적도 있고 장편 소설을 내놓기까지 버린 시간도 있었지만 낭비라기 보다는 치러야 했던 차비로 생각한다”며 ‘내 이야기’에서 ‘다른 사람 이야기’로 작품 세계를 넓히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치른 시간으로 지난 공백의 의미를 밝혔다. 첫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2011년)’ 외에도 단편집 ‘달려라, 아비(2005년)’, ‘침이 고인다(2007년)’, ‘비행운(2012년)’, ‘바깥은 여름(2017년)’으로 꾸준히 작품을 내던 작가에게는 긴 공백기였다.

생산력이 부족한 작가를 기다려줘서 거듭 감사하다는 작가는 작품 소개로 운을 뗐다. 그가 새롭게 선보이는 장편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방학의 2개월 남짓 동안 세 아이에게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제목의 모티프가 된 건 소설 속 학급의 자기 소개 게임인데 학생들이 스스로를 다섯 가지 문장으로 소개하되 그 중 하나는 거짓말을 섞어 서로 맞추게 하는 게임이다. 작가는 “누군가는 거짓말을 통해 무언가를 숨기기도 하고 실현될 수 없는 욕망을 드러내기도 한다”며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을 보호해주고 싶은 수단으로 사용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번 장편은 전작인 ‘두근두근 내 인생’의 연장선상에 있다. 같은 성장 소설이지만 차이는 있다. 당시 갓 서른 살을 넘긴 작가가 바라 본 가족에 대한 생각은 미진한 부분이 있었다. 그는 “우리 사회는 피로 연결된 끈끈한 점성의 힘이 강한 사회지만 때로는 그 점성이 건강하지 못하거나 끔찍하게 작용할 때도 있다”며 “‘폭력이 일어나는 가족은 역시 반드시 지켜야 할 미덕이나 가치가 될 수 있는가’를 살피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이상화됐던 4인 가족 모델은 이미 무너진지 오래인데 반려동물과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어떤 아저씨 역시 유사 가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했다”고 했다.

시간을 두고 같은 소재를 다른 관점에서 변주하는 것은 작가가 깨닫게 된 자신의 작품 패턴이기도 하다. 그는 2008년 발표한 단편 ‘칼자국’에서 새끼를 먹이는 것의 지난함과 모성의 건강함을 다뤘다. 이후 십년 가까이 지나 단편 ‘가리는 손(2017)’에서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신의 아이가 거짓말을 하는 광경을 목격하는 싱글맘의 이야기를 통해 ‘새끼를 먹이는 일의 끔찍함’을 담아냈다.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경험 또한 다르게 해석하면서 나타난 변화다. 어릴 적 그의 어머니는 비오는 날에도 우산을 들고 마중 나오지 못했다. 손 칼국수를 파는 어머니가 점심 장사 때문에 바쁜 탓이었다. 그는 “어느 날 가게 앞에서 커다랗고 검은 개를 만나 놀라서 크게 울음을 터뜨렸는데 엄마가 허겁지겁 식칼을 들고 뛰어나온 게 강렬하게 남았다”며 “나이를 먹으니 가끔은 부모 앞의 검은 개를 쫓아내는 게 나라는 생각도 들고 때로는 부모와 자식이 서로에게 검은 개가 되는구나 하는 깨달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젊은 거장’이라는 찬사가 아직은 큰 교복처럼 느껴진다는 그는 “앞으로 제가 쓸 소설들도 그렇게 변화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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