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서른 살 지방의원 시절의 일이다. 청년 관련 조례를 만들려니 막상 청년에 관한 모법(母法)이 없었다. 여야를 아울러 청년 의원들과 ‘청년발전기본법안’을 설계했다. 이듬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설득해 백서에 ‘청년발전기본법’ 제정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나 ‘청년기본법’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청년 정책의 골조를 만드는 데 벽돌 한 장 보탠 셈이다. 큰 질량의 자부심으로 남은 기억이다.
이때부터 ‘청년’은 내 이력의 지문(指紋) 같은 존재가 됐다. 작지만 이로운 숱한 정책이 내 손끝을 거쳐갔다. 당 지도부일 때 대학생이 대상인 ‘천 원의 아침밥’ 사업의 전국화를 제안했다. 청년정책네트워크를 이끌면서는 ‘누구나 토익 5년’을 추진했다. ‘예비군 3권(학습권·이동권·생활권) 보장’, 취업준비생이 제출한 개인정보를 파기하도록 하는 ‘개인정보 알파고(알림·파기·고지 의무 알림제)’도 주목받았다. 신혼부부의 대출·청약 기회를 늘린 ‘결혼 패널티 정상화’를 발표한 뒤에는 후배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이 과정이 늘 순조롭게 진행된 건 아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청년 정책을 제안하면 정치권은 으레 “전례가 없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예산이 없다는 말도 빠지지 않는다. 수백수천의 청년 특위가 난파선처럼 좌초한 이유다. 그러나 관점을 바꿔보자. 비단 ‘하늘 아래 새롭고’ ‘큰 돈 쓰는’ 사업이 아니어도 혁신일 수 있다. 애플의 아이폰도 기존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연결하고 조합한 산물 아니던가.
그러니 때론 발견이 발명보다 효과적이다. ‘천 원의 아침밥’은 농림축산식품부가 2017년부터 쌀 소비 촉진을 위해 진행한 사업이다. ‘누구나 토익 5년’은 공무원·공공기관 채용에 적용 중인 규정을 민간으로 넓히자는 취지다. ‘예비군 3권’은 시행령을 정비하고 지침을 마련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개인정보 알파고’는 개인정보보호법을 뿌리로 삼는다. ‘결혼 페널티 정상화’의 핵심인 대출 소득 요건 완화는 흔하디 흔한 정책 수단이다.
최근 서울시는 군 복무 기간만큼 청년 정책 수혜 기간을 늘리기로 했다. 기시감이 들지 않나.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시행한 청년 나이 상향을 살짝 비튼 결과다. ‘누구도 생각 못한 것’이 목표라면 떠올리지 못할 발상이다. 조례 개정안이 시의회에서 의결되면 군필자는 최대 42세까지 청년 정책의 수혜를 누린다. 과도하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올해 대한민국 중위 연령이 46.1세다.
혁신을 창조로만 생각하면 변화는 요원하다. 효용으로 따지면 ‘만들기’보다 ‘바꾸기’가 낫다. 청년에게 이득이면 모방인들 어떤가. 이제 우리도 행동에 주목하자. 누가 원작자냐에 매달리면 무엇도 해결할 수 없다. ‘청년의 날’을 앞두고 되새기는 명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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