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희극인 찰리 채플린이 한 말이다. 앞으로 인공지능(AI) 시대가 거쳐갈 지난한 혁신의 과정에도 잘 들어맞는 말이다. 일상 속에서 하나하나의 변화는 비극이라 할 정도로 힘들지만 이를 이겨내면 큰 즐거움이 온다. 모두가 아는 얘기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비극의 주인공이길 원하지 않는다. 그저 혁신이 가져다줄 즐거움만 누리고 싶어한다. 그래서 사회 갈등이 발생한다.
AI의 놀라운 성과에 대해서는 모두가 열광하지만 정작 그것이 자기의 일에 영향을 미친다면 태도가 달라진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AI 챗봇을 도입한 한 법무법인과 소속 변호사에 대해 대한변호사협회가 징계 절차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린다. ‘변호사가 아닌 자가 법률 상담을 해서는 안 된다’는 변호사법 조항을 위반했다는 이유다. 이에 더해 고객 권리 보호 등 여러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결국 기존 변호사들의 ‘기득권 지키기’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앞으로 AI의 도입이 사회 전체 영역으로 확대되면 이 같은 AI와 기득권의 충돌은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일상화할 것이다. 국가AI전략에서 사회 갈등 극복이 가장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이유다.
공론화는 사회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 중 하나다. 충분한 정보와 토론 위에서 사회적으로 합리적 의견, 즉 공론을 세우면 작은 이해관계에서 분출되는 저항들을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공론장이나 숙의민주주의가 새롭게 조명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한국은 변화의 흐름에서 기득권의 저항과 이해 갈등이 너무 심하다 보니 공론화의 첫걸음조차 떼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누구든 한마디 거슬리는 말이라도 꺼내면 무섭게 달려들어 치도곤을 놓는다.
한국 사회가 이런 저항을 무서워해서는 안 된다. 해야 될 혁신은 때를 놓치지 않고 해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느끼고, 가만 놓아두면 될 일을 괜히 건드려 문제를 일으킨다고 아우성치겠지만 그런 힘든 비극의 과정 없이 인생을 희극으로 만들 수는 없다. 이를 위해 우리가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임무는 공론의 힘을 키워 사회 갈등을 잠재우는 일이다.
30년 전 시작된 한국의 ‘정보기술(IT) 신화’는 ‘대한민국이 세계적인 정보화 흐름에서 뒤처져서는 안 된다’는 굳건한 사회적 공론을 바탕으로 세워졌다. 기술 발전으로 인한 수많은 부차적인 문제와 갈등이 나타났지만 결국 공론을 앞세워 이를 효과적으로 풀어낸 성과였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AI 시대에 대응하고 선도하는 데도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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