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곳곳에서 동시다발로 수천대에 달하는 무선호출기(삐삐)와 무전기(워키토키)가 폭발한 사건을 계기로 그간 베일 속에 가려졌던 헤즈볼라의 이면이 일부 드러나게 됐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19일(현지시간) 무선호출기 폭발 사건으로 레바논에서 비밀주의로 악명을 떨치던 헤즈볼라의 일부 조직망이 이례적으로 노출됐다고 보도했다.
지난 17일 레바논 곳곳에서 삐삐 수천 대가 한꺼번에 터지고 다음 날인 18일 워키토키가 연쇄 폭발했다. 폭발은 마트와 택시, 길모퉁이, 집 등 일상적인 장소에서 일어났다. 이 일로 37명이 숨지고 3000명 이상이 다쳤다.
부상자 중에는 병원 직원, 상점 직원, 자동차 정비사, 교사 등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헤즈볼라의 정규 대원은 아니지만 다른 방식으로 헤즈볼라와 연관돼 있는 것으로 알러졌다. 다만 사망자 중 대부분은 헤즈볼라 대원인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으로 헤즈볼라의 현지 장악력이 드러나게 됐다고 보고 있다. 베이루트아메리칸대학교의 조셉 바후트 공공정책연구소장은 "(헤즈볼라는) 소규모 비밀 민병대가 아니라 일종의 무장한 사회다. 사회에 스며든 거대한 수평적 조직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헤즈볼라는 미국 등 서방국이 테러단체로 규정했지만, 레바논에선 군사 조직이자 정당, 사회단체로서 입지를 구축했다. 특히 베이루트 교외와 남부 전역에서 병원, 사회복지 기관, 노동조합, 건설회사 등을 운영하고 있다. 레바논 의회에서는 헤즈볼라와 동맹 정당이 전체 128석 중 40석을 차지한다.
헤즈볼라가 통신보안을 위해 도입한 삐삐 중 일부는 현역 대원들에게 배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병참 담당과 예비군, 병원 등 민간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삐삐를 받았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전문가들은 헤즈볼라가 현역 대원 최대 5만 명과 예비군 수만 명을 보유하고 있다고 추정한다. 삐삐는 예비군 사이에 널리 배포됐으며 이는 전투, 부상자 치료 등 임무 수행에 이들을 소집하는 데 사용됐다고 전해졌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