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과의 해군력 격차를 줄이기 위해 동맹국의 도움을 구하는 가운데 한국 조선업계의 강점이 부각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3일 보도했다.
WSJ은 ‘세계 최대 조선소에서 중국에 맞설 동맹 찾는 미국’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은 해양 지배력이 커지고 있는 중국에 필적하는 조선 역량과 노하우, 인재를 보유하고 있다”며 미국 해군 함정 사업 협력 논의 대상인 한국 조선업계의 장점을 소개했다.
먼저 대규모 생산능력을 꼽았다. 세계 최대 조선업체인 HD현대중공업(329180)의 경우 울산 본사에 설치한 10개의 드라이독(선박건조 설비)에서 매년 40~50척의 군함과 상업용 선박 주문을 소화한다. 1만4000여 명에 달하는 근로자들이 필요에 따라 군함이나 상업용 선박 건조 현장에 배치된다. 한 조선소에서 군함과 상선을 동시 건조할 수 있어 수요 변동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은 생산 효율성 면에서 또 다른 강점이라고 볼 수 있다.
WSJ은 이 같은 유연성이 미국이나 유럽 조선업체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부분이라며 HD현대가 외부 영향을 최소화하고, 효율적으로 주문에 대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 조선업체들이 이미 뉴질랜드, 필리핀, 페루 등 여러 국가의 해군 함정을 건조한 경험이 있는 데다 탄탄한 인력·기술력을 보유해 비용 효율성 면에서도 미국에 훨씬 앞선다는 점도 언급됐다. WSJ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같은 사양의 함정을 미국에서 건조할 경우 한국보다 2배 이상 비용이 들고, 건조 기간도 3분의 1 정도 더 길어진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경우 2차 세계대전 직후만 해도 세계 최고의 조선능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조선업 자체가 설비투자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다 보니 점차 수익이 좋지 않은 ‘사양 산업’으로 밀려났고, 한때 수백 개에 달하던 조선소도 수십 개로 급감했다. 이 과정에서 1980년대 600척 안팎의 군함을 보유하며 세계 최강의 해군력을 자랑하던 미군은 현재 보유 군함 수가 반토막 났다. 반면 중국은 2000년대 초반까지 조선산업에서 존재감이 미미했으나 정부가 1000억 달러 이상의 보조금을 투입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현재 미국은 상업용 선박 보유량에서도 중국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지난 4월 미국 연방의회가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이 보유한 트레일러 선박은 약 7000척이나 되지만, 미국은 약 200척에 불과하다.
미중 갈등으로 중국이 미국으로 가는 각종 상품의 운송을 막을 경우 미국의 공급망은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에 미국이 선택한 것은 세계 조선업계에서 중국과 함께 ‘톱3’를 형성하는 한국·일본 조선업계와의 협력이다. 미국은 현행법상 군함을 외국에서 건조할 수는 없다. 이에 미국은 HD현대 등 한국 조선업체들이 미국에서 직접 조선소를 운영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실제로 한화그룹은 지난 6월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필리조선소 지분 100%를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에 대해 미국 해군은 한화그룹의 미국 조선업체 인수가 중국과의 경쟁에서 필수인 미국 조선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환영했다. 지난 2월 울산을 방문한 카를로스 델 토로 미국 해군 장관은 HD현대 인사들에게 “미국에 투자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은 HD현대의 군함 건조 속도와 비용이 미국에 비해 훨씬 빠르고 저렴하다는 점에 주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정기선 부회장은 “세계 1위 조선산업을 영위하고 있는 노하우와 역량을 십분 활용해 미국과 다양한 협력을 이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HD현대는 향후 10년 내로 미국을 포함한 해군 함정 건조 및 유지보수 부문 매출을 현재의 세 배로 늘린다는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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