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비해 서울, 특히 강남 지역 학생들의 서울대 합격률이 높다는 한국은행의 최근 보고서가 화제다. 이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서울대 입시에 지역 할당제를 도입하자는 제안에 대해 일부 언론은 중앙은행이 생뚱맞다며 삐죽거리고 교육계도 밥그릇을 뺏긴 듯 불편한 기색이다. 혹자는 그 보고서가 학문적으로 엄밀하지 못하고 해석도 과장된 측면이 있다며 평가절하한다.
이 모두 문제의 본질을 비껴간 지적이다. 실제 서울대 신입생 가운데 서울 출신, 강남 지역 출신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팩트이기 때문이다. 사실 최근 일도 아니다. 2000년대 초반 필자도 참여했던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신입생 분석 결과에서도 부모가 전문직이거나 서울 출신인 학생의 비중은 이미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교육정책을 바로잡는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입시가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것에서 시작한다. 서울대가 부잣집 학생을 ‘선발’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성적순 입시제도가 그런 학생들에게 유리한 것이다. 공교육만으로 내신과 수능 고득점이 가능하다면 참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너 나 할 것 없이 더 높은 점수를 위해 경쟁적으로 사교육에 투자하며 학습 능력이 같아도 사교육을 더 받은 학생이 고득점에 유리하다. 오죽하면 지역 할당이라는 처방까지 나올까 싶지만 그래봐야 크게 바뀔 것도 없다.
서울대가 지역 할당을 하면 서울의 고득점 학생은 자연히 명문 사립대로 몰린다. 그러면 명문 사립대 신입생의 서울과 지방 간 격차에 대한 보고서가 나올 것이고 명문 사립대에도 지역 할당을 해야 한다고 할 것이다. 현재의 입시하에서는 이런 도미노 현상이 계속될 수밖에 없고 지역 인재가 서울로 진학할수록 지방대만 고사한다는 불평도 늘어날 것이다.
학생들을 성적으로 줄 세우는 것은 교육 당국이 상위권 대학들의 입시에서 내신과 수능 이외의 다른 요인들을 배제하도록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분은 입시 공정성이다. 조국 의원의 자녀 입시 비리를 떠올리면 교육부의 고민도 충분히 이해는 간다. 그러나 입시 정책의 우선순위를 학습이 아니라 공정성에 두는 것도 본말이 전도된 것이고, 실상은 빈대도 제대로 못 잡고 초가삼간만 태워버린 꼴이다. 공정성에 매달려 입시를 계속 땜질해온 결과가 오히려 수도권 부잣집 학생의 상위권 집중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입시를 포함한 교육정책은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갈 미래 세대의 인재양성이라는 장기적 목표를 최우선으로 삼아야 하고 이를 위한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각 학생이 개성과 능력에 따라 자신에게 적합한 양질의 교육을 받을 기회가 보장돼야 하며 그래야 공정한 교육이라고 할 것이다. 이런 교육 환경은 입시·정원·등록금 등 모든 차원에서 대학 간에 자율적인 경쟁이 활성화될 때 가능하다. 각 대학이 특성화된 프로그램과 선발 방식, 장학금 패키지로 우수 학생을 유치하려고 경쟁할 때 비로소 학생들의 다양한 적성에 따른 선택권이 확대될 수 있고 그래야 모든 학생이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자신에게 맞는 교육을 받을 기회가 제공될 수 있다. 특성화를 위한 투자와 장학금에는 재원이 필요하고 등록금 현실화는 그 마중물이 된다. 적절한 투자와 장학금으로 우수 학생을 유치해 훌륭한 인재로 길러내는 대학에는 동문들과 각계의 기부도 활성화되고 그 기부가 또 투자에 활용되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될 수 있다.
지금까지 현실은 어떤가. 표심을 의식한 등록금 규제는 사립대의 투자와 발전을 억눌러 왔고 학생들이 원하는 대학의 정원을 오히려 계속 줄여온 결과 학생들의 선택지도 좁아졌다. 눈앞의 이해관계자 입맛에 따른 규제 탓에 학생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기회는 줄어들고 미래 세대의 인재양성도 뒷전으로 밀려버린 것이다. 이제라도 교육 당국은 멀리 봐야 한다. 규제로 대학을 통제하겠다는 달콤한 유혹을 떨쳐버리고 긴 안목에서 자율성을 허용해야 한다. 우리나라 일류 기업들도 규제가 아니라 자율 경쟁을 통해 성장해왔다. 대학이라고 다를 바 없다. 하버드·예일과 같은 명문대도 정부의 통제가 아니라 자율 경쟁을 통해 세계적인 대학으로 성장했다는 점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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