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해외칼럼] 우크라이나의 ‘트럼프 리스크’

파리드 자카리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에서 벌어지는 정치 논쟁의 단골 화두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민주당은 우크라이나의 편에 서겠다고 약속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백악관에 재입성하면 단 하루만에 전쟁을 끝낼 것이라고 공언한다.

우크라이나전과 관련한 모든 논쟁은 언제 끝날지 모를 추상적인 대화처럼 들린다. 이와 대조적으로 우크라이나 현지의 분위기는 생생하고 팽팽하며 다급하다. 필자는 2022년과 2023년의 비슷한 시기에 키이우를 방문했지만, 지금의 분위기는 그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우크라이나는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고, 미국의 대선을 전후한 석달 남짓한 기간이 전쟁의 최종 결과를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연례 회의인 유럽얄타전략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두차례 키이우를 찾았을 때 필자는 도시 전체가 놀랄 만큼 정상적이고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젠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우선 러시아의 공습 건수가 크게 늘어났다. 우크라이나의 방공망을 뚫고 키이우의 중심부로 날아든 러시아 미사일은 거의 없지만 주민들은 심각한 심리적 충격에 시달리고 있다.

미사일 위협 이상으로 우크라이나인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정전이다. 러시아는 집요하게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기반시설에 공격을 퍼부었다. 여기에는 이란이 개발한 샤헤드 드론과 이란에 제공한 탄도 미사일이 동원됐다. 이들은 앞으로 몇 주 내에 우크라이나 전력망을 무차별 공격할 것이다.

불과 한 달 전 러시아 영토로 진입한 우크라이나군은 쿠르스크 지역의 수 백 평방 마일을 장악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는 군인과 민간인을 포함한 우크라이나인들의 사기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이제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로의 진격이 전쟁의 기본적인 역학을 극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많은 사람은 러시아 영토로 진격한 것 자체가 실수가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정부가 정예병력을 러시아 진군작전에 투입함으로써 750마일에 달하는 우크라이나 동부전선에서 러시아군이 승기를 잡도록 만든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유야 어찌됐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주요 병참기지인 포크로브스크를 향해 전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곳이 함락되면 러시아는 돈바스 전역을 수중에 넣는다는 목표에 바짝 다가서고 우크라이나군의 사기는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며 실질적으로 지상전의 전세가 뒤집어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전세는 러시아군이 동부와 남부 우크라이나를 통해 꾸준히 진격하던 2022년 2~3월의 상황으로 되돌아간다.

지난 9월 19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후 처음으로 흑해의 공해상에서 이집트로 곡물을 운반하는 화물선을 공격했다. 겁을 집어먹은 상업용 선박들이 흑해 항로를 기피할 경우 전쟁 동안 우크라이나가 이룬 가장 큰 성과중의 하나, 즉 선박과 곡물을 비롯한 수출품의 안전을 최고수준으로 유지해온 능력은 빛을 잃는다. 이번 전쟁의 경제적 요소는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했으나 우크라이나는 어떤 식으로건 현찰을 끌어모아야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고전 중인 우크라이나의 무기산업은 거의 끊임없이 무기를 생산하는 러시아에 맞서기 위해 더 많은 투자를 필요로 한다.

필자가 정부관리와 민간인들로부터 자주 접한 우크라이나인들의 가장 큰 두려움은 서방국들, 그중에서도 특히 미국의 결의다. 필자가 만난 한 키이우 시민은 “우리는 결코 러시아의 속국이 되지 않을 것이고, 이를 위해 계속 싸울 것이지만 혼자서 싸우게 될까 두렵다”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미국의 원조가 의회내 완고한 공화당 의원들 사이의 내분으로 지연되면서 전황이 악화됐고,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11월 선거에서 트럼프가 승리할 경우 발생할 사태를 두려워한다.

케르스티 칼유라이드 전 에스토니아 대통령은 필자에게 “이번 전쟁은 의지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푸틴은 이기기 위해 싸운다. 그는 경제를 전시체제로 전환했고 국내총생산(GDP)의 7~8%를 전비로 사용한다. 반면 서방세계는 우크라이나의 방어를 위해 대략 GDP의 0.2%를 지원할 뿐이다. 만약 우리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배가한다면 푸틴은 파산할 것이다.”

서방국들의 논의는 몽롱한 추상의 세계에서 긴박한 현실로 이동해야 한다. 우크라이나는 경제·정치·군사적 측면에서 바로 지금 원조와 도움을 필요로 한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앞으로 4개월간의 지원이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마지막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행동해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하되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