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을 누르면서 기업 등 소비자들이 얻는 이익보다 생산자인 한국전력의 경제적 손실 금액이 더 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남경식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한국경제연구학회 6월호에 실은 ‘전력 가격 왜곡의 후생 효과’ 논문에서 2005년부터 2017년까지 정부의 전력 가격 통제 정책으로 소비자들은 약 11조 9000억 원가량의 소비자 잉여 증가를 누렸지만 한전은 원가 이하로 전력을 판매하면서 12조 6000억 원가량의 순손실을 입었다고 분석했다. 전력 가격 왜곡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해당 기간 총 6248억 원의 사회적 후생이 줄었다는 것이다. 에너지 다소비 업종 중심의 산업구조 고착화, 에너지 과잉 소비 등 다른 부작용도 크다고 지적됐다.
우리나라의 가정용 전기요금 가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산업용 전기요금 가격은 OECD 평균의 66% 정도다. ‘두부 값(전기요금)이 콩 값(연료비)보다 싸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역대 정부가 물가 안정, 제조업과 저소득층 지원 등 정치 논리에 국가 백년대계인 에너지 정책을 동원했기 때문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과속 탈원전 정책을 고집하며 값비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비중을 높이면서도 선거 표심을 의식해 전기요금 인상을 미뤘다. 윤석열 정부도 유권자의 눈치를 보느라 가격 정상화에 소극적이다. 이런 사이 한전의 누적 적자는 43조 원, 총부채는 203조 원으로 불어났다. 한전은 재무구조 악화로 인해 반도체 송배전망도 제때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처럼 ‘포퓰리즘 전기요금’ 정책을 지속하면 일부 발전사 부실화 등으로 전력 산업의 생태계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정부는 더 이상 물가 핑계를 대지 말고 전력 가격 현실화를 위한 단계적인 로드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정치권의 입김에 휘둘리지 않도록 미국·유럽 등 선진국처럼 독립적인 에너지 규제 기구를 만드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자영업자 등 취약 계층에 대해서는 에너지 바우처 확대 등을 통해 핀셋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야는 기후변화와 인공지능(AI) 시대 전력 폭증에 대비해 송전망 건설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는 ‘국가 전력망 확충 특별법’, 사용 후 핵연료를 영구 저장할 수 있도록 하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 처리를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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