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역사를 통해 인류가 경험한 커다란 변화의 물결 속에는 크건 작건 그 계기로 작용하는 요인들이 배태돼 있다. 고대 문명의 탄생을 이끌었던 문자의 발명, 18세기 산업혁명의 신호탄이 된 증기기관의 등장과 공업화, 그리고 본격적인 정보화 시대로의 전환을 알렸던 인터넷·스마트폰·인공지능(AI)에 이르기까지.
그 요인들은 독자적으로 또는 다른 요인들과 합쳐져서 우리의 생활과 문화를 한층 더 발전시키고 성장하게 하는 마중물로써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왔다. 다음 달 25일 첫걸음을 내딛는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도 우리 보험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여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가입자 수 4000만 명. 연간 보험금 청구 약 1억 6000만 건. 간단한 수치만으로도 알 수 있듯이 실손보험은 그야말로 ‘국민 보험’, 우리 일상에서의 ‘필수 보험’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보험금 청구를 위해 진료 후 의료기관에서 서류를 일일이 발급받아 제출해야만 하는 국민들의 불편은 실손보험의 긍정적 효용 이면에 자리 잡은 난제였다.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의 개선 권고 이후 14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친 다양한 논의 끝에 지난해 10월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내용을 담은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의료기관 규모와 준비 시간 등을 감안해 병원급 이상은 올해 10월 25일, 의원급과 약국은 내년 10월 25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숙원이었던 국민적 불편 해소는 물론 보험 산업의 디지털화도 혁신적으로 앞당길 기회가 펼쳐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손보험에 가입한 국민들이 더 이상 종이 서류를 발급받지 않고도 편리하게 보험금을 청구하고 지급받을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일이다. 실제로 국회 법안 통과 후 제도 연착륙을 위해 정부를 비롯한 보험 업계, 의료계 등 관계기관 모두가 합심해 숨 가쁘게 달려왔다. 시행까지 주어진 시간은 불과 1년 남짓.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제도 마련을 위한 수많은 과정들은 국민 편의성 제고라는 일념으로 함께했기에 가능했다.
이제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를 위한 전산 및 제도적 인프라에 대한 준비는 마쳤다. 하지만 보다 실효성 있는 제도 안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의료계의 적극적인 참여가 절실하다. 의료기관에서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환자의 진료 기록 등을 전송 대행 기관과 보험사로 전송할 수 있도록 기술적 매개 역할을 담당하는 전자의무기록(EMR) 업체의 참여와 지원 역시 매우 중요하다.
당장은 참여하지 않아도 벌칙은 없다. 하지만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는 국민과의 약속이라는 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보험 업계 역시 대승적으로 전산 시스템 구축과 운영 비용을 모두 부담하고 있다.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우선적으로 제도에 참여한 후 대화를 통해 국민들과 참여자 모두 윈윈할 수 있는 보완책을 충분히 모색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시대. 국민을 위해 혼연일체가 돼 성공적으로 추진함으로써 보험 산업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역사적 전환점’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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