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장례식장에 조문을 갈 때마다 입 밖으로 내놓긴 뭣하지만 신경쓰이는 게 있었습니다. 바로 조문객들을 위한 식탁 위의 일회용품들입니다. 수저, 접시, 컵 전부 일회용품이니까요. 에디터들도 상을 치러봤지만 다른 선택지라고는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럼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일회용품이 장례식장에서 쓰이는 걸까요? 환경부에 따르면 한 해에 전국 장례식장에서 배출되는 일회용품 쓰레기는 3억700만개, 무게로는 2300톤이나 됐습니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일회용 접시의 20% 가량이 장례식장에서 쓰였다고 합니다.
다행히 이 수치들은 이제 빠르게 줄어들 전망입니다. 전국 곳곳의 장례식장에서 일회용품을 다회용기로 바꾸는 분위기이기 때문입니다. 서울시는 일회용 플라스틱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시립병원에서 일회용품을 없앴습니다. 서울의료원 장례식장은 2023년 7월에 전국 최초로 다회용기를 전면 도입했습니다. 상조회 서비스에 포함되는 일회용품 사용도 금지할 만큼 철저하게 말입니다. 그리고 강원도 춘천시는 올해부터 전국 지자체 중에서 최초로 지역 내 모든 장례식장(4곳)에 다회용기를 도입했습니다.
삼성서울병원은 올해 7월 전국 상급종합병원 중 최초로 장례식장에 다회용기를 도입했습니다. 올해 12월까지가 시범 사용 기간이라 전체 14개 빈소 중에서 대형 3곳은 다회용기 의무사용으로, 일반 빈소는 '다회용기 사용 권장'으로 정했다고 합니다.
앞서 나선 서울의료원의 성과는 인상적입니다. 2023년 1월 서울의료원 장례식장에서 배출된 쓰레기는 100리터짜리 기준으로 793개나 됐는데, 다회용기를 도입한 7월에는 136개로 매우 드라마틱하게 줄었습니다. 이용객 설문조사 결과 85.9%가 만족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이런 흐름은 전국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지난달에도 경기도 파주시, 경북 포항시가 장례식장 다회용기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런데 장례식장에는 다회용기를 대량으로 세척할 수 있는 설비가 갖춰져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외부의 전문 업체가 수거해 세척한 후 다시 공급하는 방식입니다. 충청남도처럼 지역 자활센터에 세척을 맡겨 저소득층 일자리 창출 효과까지 얻은 곳도 있습니다.
전문 업체의 세척을 거친 다회용기는 일회용품보다 더 깨끗합니다. 서울시의 경우 주기적인 유기물 오염도(ATP) 위생 검사를 통해 민간 소독업체 위생 기준이자 식품위생법상 안전기준치인 200RLU 보다 4배 더 강화된 50RLU을 기준으로 용기 청결을 유지한다고 합니다. RLU(Relative Light Unit)는 오염도를 나타내는 단위인데, 깨끗할수록 수치가 낮습니다. 참고로 일회용 컵의 평균 오염도는 125RLU. 게다가 일회용 컵이나 접시의 미세플라스틱을 상상하면 다회용기가 훨씬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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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장례식장에서 먼저 이런 변화를 시도하긴 아무래도 어렵죠. 그래서 지자체 차원에서 예산을 투입한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춘천시는 2023~2024년에 2.5억원을 투입해서 지역 내 전체 장례식장(4곳)에 다회용기를 보급했습니다. 세척비도 8000만원 가량 지원했고요. 그리고 2024년 4월까지 춘천 장례식장들의 다회용기 사용률은 빠르게 70%를 달성했습니다. 일회용품 쓰레기가 없어지고 탄소배출도 줄어들어서 조금이라도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다면 잘 쓴 세금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장례식장의 일회용 접시와 수저, 컵 등을 구입해 쓰는 비용과 다회용기 사용료는 대체로 비슷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지자체 지원도 있으니까요. 간혹 다회용기 사용료가 일회용품 구입비용보다 더 비싼 곳도 있긴 하지만 큰 차이는 아니라고. 전국 어느 장례식장에 가더라도 일회용품을 찾아볼 수 없는 날이 얼른 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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