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값이 사상 처음으로 2600달러를 돌파한 후 연일 최고치를 다시 쓰고 있다. 중동 정세가 악화 일로를 걷는 데다 세계 양대 경제 대국인 미국과 중국이 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 연착륙에 나서자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은 등으로 투자 수요가 쏠린 영향으로 분석된다. 특히 ‘원자재 블랙홀’인 중국이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내놓으며 철근과 비철금속 등 원자재 가격이 ‘동반 랠리’를 보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국제 금 현물 가격은 24일(현지 시간) 트로이온스당 2657.10달러로 장을 마감하며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금 가격은 지난달 16일 처음으로 온스당 2500달러 선을 돌파한 데 이어 이달 20일 2600달러 선을 넘어선 후 연일 사상 최고 기록을 새로 쓰고 있다. 25일 장중에는 2700달러 선을 터치하기도 했다. 올해 들어 금 가격은 29% 올랐는데 이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 상승 폭(20%)을 뛰어넘는 수치다.
이스라엘과 레바논 친(親)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 간 충돌 격화로 고조된 중동 확전 우려도 금을 비롯한 안전자산으로의 자금 이동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은 앞다퉈 안전자산을 쓸어 담으며 이 같은 흐름에 동조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계속되고 있는 중앙은행들의 금 매입세는 최근 들어 더욱 가팔라졌다. 올해 상반기 중앙은행들의 금 신규 매입 규모는 483톤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국과 튀르키예·카타르·인도·체코·폴란드 등이 특히 공격적으로 금 매입이 나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투자은행 UBS는 “중동과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긴장이 악화되면서 헤지 수단으로서 금의 매력이 커지고 있다”며 금 가격이 내년 초까지 2700달러 선 수준을 나타낼 것으로 봤다. 씨티그룹과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금 목표 가격을 3000달러로 제시했다.
금과 함께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은 가격 역시 오름세다. 은 현물 가격은 24일 종가 기준 온스당 32.09달러로 5월 기록했던 연고점(32.10달러)에 근접했다. 올해 들어 지난주까지의 선물 계약 기준 은 가격 상승률은 같은 기간 금값 상승률을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경기 침체에 대한 불안도 안전자산 투자 러시로 이어지고 있다. 24일 발표된 콘퍼런스보드(CB)의 9월 미국 소비자신뢰지수는 98.7로 전월(105.6)은 물론 월가 예상치(104)를 크게 밑돌았다. 감소 폭은 2021년 8월 이후 3년 만에 최대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이달 기준금리를 전격 50bp(bp=0.01%포인트) 인하한 점도 경기 침체 우려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좀처럼 경기 둔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중국은 지급준비율과 정책금리를 낮추는 등 대규모 부양책을 꺼내 들었다. 이에 구리 등 원자재 가격과 국제유가도 상승세를 타는 모습이다. 지난달 초 연저점(8769.50달러)을 찍었던 구리 가격은 이날 9796달러 선을 회복했다. 철근과 비철금속도 일제히 오름세로 돌아섰다. 이날 상하이선물거래소에서 철근 선물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3.43% 오른 톤당 3134위안에 거래됐고 백금(3.27%), 아연(4.44%), 알루미늄(2.61%) 등 비철금속도 모두 올랐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 역시 70달러 선을 재돌파했다.
전 세계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이 높아진 가운데 금리 환경이 변화하자 가상자산 가격도 들썩이고 있다. 코인베이스에 따르면 비트코인 가격은 24일 6만 3332.72달러로 2주 전보다 17% 가까이 올랐다. 최근 몇 달간 약세 흐름을 지속하던 비트코인 가격은 25일 장중 약 한 달 만에 6만 4000달러 선을 넘어서기도 했다. 비트코인 가격은 연준이 빅컷(0.50%포인트 금리 인상)을 단행한 이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후 본격적인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더리움 가격 역시 24일 2647.07달러로 FOMC 이후부터 13% 상승했다. 금리 인하가 개시돼 저금리 기조가 강해질수록 전통자산들의 수익성이 낮아져 위험자산에 대한 수요가 높아진다. 중국이 통화 완화에 시동을 걸고 있는 점 역시 가상자산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가상자산 시장에서 금리 인하 효과는 단기적일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가상자산거래소 비트멕스의 아서 헤이스 공동창업자는 미국 달러화 약세에 따라 엔화를 빌려 다양한 자산에 투자하는 엔캐리 트레이드가 대거 청산될 경우 가상자산 시장 역시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7월 일본은행(BOJ)이 정책금리를 0.25%로 인상한다고 발표한 후 비트코인 가격은 며칠에 걸쳐 20% 넘게 폭락하는 등 크게 출렁인 바 있다. 중동 정세 등 최근 요동치는 불확실성이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의 동반 상승을 이끄는 일시적 요인으로 꼽히는 점도 투자에 신중해야 할 이유로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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