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이후 모든 선거에서 참패했는데 그 주된 원인은 선거 사령탑과의 갈등이었다. 특히 총선에서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야당에 192석을 내주고 사실상 ‘식물 대통령’ 신세로 전락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대통령 독대 요청은 대통령 국정 지지도가 최저로 떨어진 상황에서 의정 갈등을 비롯한 국정 현안을 해결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다. 물론 방법론의 문제는 있었다. 대통령과의 독대 신청 사실을 언론에 공개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고 의정 갈등이나 김건희 여사 문제 등 국정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현안에 대해 대통령을 압박하는 효과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처한 현실에서 서로의 갈등은 사치일 뿐이다. 대통령은 역대 최저 국정 지지도에 김 여사 관련 의혹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은 사법부 판결이 엇갈리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명품백 사건도 최재영 목사의 악의적 함정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국민 정서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 와중에 공천 개입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
국민은 대통령 가족이 관련된 의혹에는 매우 냉정하다.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의 의상과 인도 타지마할 방문 의혹, 딸 다혜 씨와 관련된 의혹이 고발돼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된 것도 이런 국민성과 무관하지 않다. 야당은 압도적 의석을 바탕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김 여사 의혹 관련 특검 법안을 상정해 통과시키고 있다. 벌써 두 차례 대통령의 재의요구권이 행사됐다. 그러나 중도에 보수 유권자들까지 지지를 철회하면 재의요구권 행사도 적지 않은 정치적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시기의 문제일 뿐 언젠가는 결단의 날이 올 것이다. 과거 김영삼, 김대중 두 대통령이 아들을 구속시키는 아픔을 감내해야 했던 것도 그래서였다.
의정 갈등을 비롯한 국정 현안을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단독으로 만나 시급히 논의하자는 여당 대표의 독대 요청은 이러한 위기의식의 표현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은 체코 방문 전 계획된 여당 지도부와의 회동을 연기했고, 이어서 한 대표의 공개적 독대 요청을 거부했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와의 갈등이 노출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이준석 전 대표와 수시로 갈등을 겪었다. 이 대표를 강제로 중도 퇴임시키고 김기현 의원을 대표 자리에 밀어 올린 이후에는 뜻이 같은 대표를 선임했으니 갈등이 없어질까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김 대표의 총선 출마를 두고 티격태격하더니 결국 중도 사퇴를 불러왔고, 한동훈 비대위 체재에서의 총선도 용산과의 갈등 속에 역대급 참패로 막을 내렸다. 윤 대통령의 정계 진출 이후 지금까지 모든 비대위원장을 포함한 당 대표들과의 갈등이 정치 상황을 어렵게 만들었다면 문제의 원인은 자신에게서 찾아야 할 것이다.
최근의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중도는 물론이고 보수적 성향의 응답자들도 대통령과 여당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특히 영남의 6070세대까지 지지율이 추락하고 있는 것의 의미는 자명하다. 이른바 윤·한 갈등을 보는 보수 유권자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못해 냉소적이다. 국민이 묻고 있다. 국민을 위한 대통령인가, 김 여사를 위한 대통령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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