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공적인 환경에서는 다양한 생물들이 함께 공존할 수 있지요. 건축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중들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열린 장소를 건축물에 담아 도시에 활력을 더하고 있습니다."
김태만 해안건축 대표는 지난 26일 서울 강남구 JW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사단법인 서울부동산포럼(SREF) 제 68차 조찬세미나에서 기존 설계했던 사례들을 소개하며 이같이 밝혔다.
그가 이끌고 있는 해안건축은 지난해 영국의 건축전문지 '빌딩 디자인(Building Design)'이 발표한 '올해 세계 최고의 100대 건축회사(World architecture top 100)'에서 국내 1위, 전세계 7위로 이름을 올린 건축설계회사다. 현재 용산의 랜드마크가 된 아모레퍼시픽 신사옥과, 기피시설인 화장터를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한 서울추모공원 등이 모두 김 대표의 손을 거쳤다.
그는 주요한 공간 개발 트렌드로 '다공성'을 강조했다. 건축물에서 다공성이란 필로티, 발코니, 테라스, 옥상정원 등 내부공간과 잘 어우러지는 외부공간을 가리킨다. 김 대표는 "우리가 만드는 것은 단지 건축물이지만 그곳에 사람들의 시선과 감정이 머물고 또다른 의미가 부여돼야 비로소 공간이 풍부해지는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4년 준공된 용산민자역사다. 용산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립PC를 구입하러 전자상가로 몰리는 시절이었다. 김 대표는 "상업시설의 공간 구성이 유기적으로 이뤄지지 않던 시기"라며 "어떻게 하면 20년 후 미래 공간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남겨둘 수 있을까 고민이 컸다"고 회고했다. 상업시설인 만큼 주기적으로 사업 주체와 MD(물품)가 바뀔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그는 백화점과 쇼핑몰의 경계를 없애고 건물 중앙에 비어 있는 커다란 공간을 만들었다. 현재 이 공간은 고객들을 위한 이벤트나 다양한 종류의 팝업과 플리마켓 등이 열리는 활력 있는 광장이 됐다.
올초 개장 10일 만에 84만 명이 몰리는 등 인기가 쏟아진 '스타필드 수원' 사례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김 대표는 "기존 스타필드는 저층으로 이뤄져 고객들이 한 눈에 공간을 담을 수 있었지만 수원 스타필드는 백화점처럼 고층으로 구성돼 공간 전환이 필요했다"며 "사람들이 모여서 책도 보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인 별마당 도서관을 중간 층에 넣어 쇼핑의 경험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역할이 되도록 했다"고 말했다.
용산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거듭난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역시 건물 차갑고 엄숙해 보이는 외관과는 달리 광장을 연상케 하는 뻥 뚫린 열린 공간이 내부에 마련돼 있다. 저층부에는 외부인에게도 개방되는 뮤지엄과 라이브러리 등이 들어섰다. 김 대표는 "사람들이 움직일 수 있는 콘텐츠가 있어서 고고해 보이는 외관과는 달리 고급 문화시설에 온 것처럼 공간이 잘 활용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건축물은 현재 시장 수요에 맞춰 사용되고 있을 뿐 언젠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최근 시장에서는 주거시설이 호텔로 탈바꿈하거나 상업시설이 오피스로 개발되는 등 수요에 따른 용도 변경이 잇따르는 추세다. 김 대표는 "건물 용도가 달라도 사실 비전문가가 보면 건축물은 다 똑같이 생겼다"며 "오피스는 이래야 한다, 백화점은 이래야 한다'는 선입견을 깨고 창의적인 도전 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를 개최한 사단법인 서울부동산포럼은 부동산 개발 및 금융, 마케팅, 자산 관리 등 업계 오피니언 리더와 부동산 학계 교수, 법률, 회계, 감정평가 업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순수 비영리 단체다. 2003년 63명의 회원으로 시작해 현재 약 200명이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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