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휩쓴 극우 물결에 오스트리아가 합류했다. 유럽의 경제적 위기를 유럽연합(EU) 탓으로 돌리는 극우 정당의 전략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나치 독일을 지지하는 극우 정당이 오스트리아 총선 1위로 올라섰다.
29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치러진 오스트리아 총선의 출구조사 결과 극우 성향의 자유당(FPO)이 29.1%의 지지율을 얻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총선에 승리할 전망이다. 칼 네함머 총리를 배출한 중도 보수 성향의 국민당(26.2%)보다 약 3%포인트를 앞선다. 이날 출구조사가 발표된 후 헤르베르트 키클 자유당 대표는 총선 승리를 선언했고 네함머 총리는 패배를 인정했다. 중도 좌파 성향인 사회민주당(20.4%)과 진보 성향의 네오스(8.8%), 녹색당(8.6%) 등이 뒤를 이었다. 총선 투표율은 약 78%를 기록했다.
자유당은 1950년대 나치 부역자들이 세운 극우 정당으로 줄곧 비주류에 머물다 2017년 총선에서 제3당으로 도약했다. 지난 2년 동안 전국 여론 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는 등 세력을 넓혀왔지만 총선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역사상 처음이다. FT는 “보수당은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지만 핵심 지지율은 유지한 반면 녹색당과 사회민주당이 크게 패배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FT는 이어 자유당의 승리는 유럽 대륙에서 극우가 번져가고 있는 현상을 입증하는 최신 사례 중 하나라고 짚었다. 실제 지난해 네덜란드 총선에서 헤이르트 빌더르스가 이끄는 극우 성향 자유당이 1위를 차지했고 그에 앞서 2022년 9월 이탈리아 조기 총선에서 조르자 멜로니가 이끄는 극우 정당인 이탈리아형제들(Fdl)이 승리했다.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강경 우파와 극우 정당이 총 167석(23.2%)을 차지해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지지율이 커졌고 7월 프랑스 총선에서도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RN)이 선거 내내 돌풍을 일으키며 막판까지 단독 1위 가능성을 과시했다. FT는 “유럽 대륙의 주요 정당이 일련의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에 대응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키클이 이끄는 자유당은 EU(유럽연합)가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것을 강력히 비판하며 유럽의 생계비 위기에 대한 책임을 EU에 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자유당은 과반 의석 확보에는 실패했다. 연정을 위한 파트너가 필요한 셈이지만, FPO의 강력한 지지율은 오히려 연정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70년 동안 오스트리아 정치를 장악해온 온건 보수당인 국민당(OVP)는 키클 대표에 대한 반감을 자주 비춰왔다. 네함머 총리는 유사한 정책적 입장을 공유하고 있는 자유당과 연대를 배제하지는 않으면서도 키클에 대해서는 “음모론을 좋아하는 사람과 정부를 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 바 있다. 특히 키클이 2021년 FPO의 대표가 된 후 선거 전략의 일환으로 나치 독일에 대한 금기를 깰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그에 대한 OVP의 반감은 더욱 커진 상태다. 키클 대표는 선거 운동을 하는 여름 내내 자신을 ‘국민 총리(Volkskanzler)’라고 불렀는데 이는 오스트리아인들에게 아돌프 히틀러를 연상시키는 용어다. 지난 주말에는 자유당 당원들이 나치 친위대가 즐겨 부르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논란을 빚기도 했다.
다음 정부를 임명할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 대통령도 과거 키클 대표를 장관으로 임명하는 것을 거부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 등 키클에 대한 반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가디언은 “사회민주당, 네오스, 녹색당 역시 키클 대표와의 연대를 배제하고 있어 자유당이 연정 구성을 위해 당 대표인 키클을 버려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치 컨설팅 회사인 VE인사이트의 연구 책임자인 마커스 하우는 FT에 “판 데어 벨렌 대통령은 OVP와 사회민주당간의 대연정을 강력하게 주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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