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K원전의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해 체코를 방문하자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김정호 의원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의원 22명은 ‘체코 원전 수출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체코 원전 수출에 대해 △가격 덤핑 △유럽연합(EU) 차입금 과대 △체코 국가 예산 건전성 문제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프랑스전력공사(EDF) 진정서 제출 관련 문제 등을 근거로 실익이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성명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으며 그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첫째, 의원들은 성명에서 “윤석열 정부가 체코 원전 수출을 위해 덤핑 가격을 제시했다”며 “수조 원대 손실이 발생할 수 있어 국민의 혈세를 쏟아부어야 할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즈비네크 스타뉴라 체코 재무장관은 한국이 경쟁력 있는 건설 비용과 공사 기간 보장을 이유로 입찰에서 승리했다고 밝힌 바 있다. 체코 현지 언론(Info.cz)은 7월 프랑스 에너지 전문가인 얀 바르텍의 발언을 인용해 “한국의 제안가가 프랑스 EDF보다 낮은 것은 놀랍지 않으며, 이는 한국이 원전을 지속적으로 건설해 엔지니어링과 공급망에서 효율성을 극대화한 결과”라고 보도했다. 프랑스 르몽드지 역시 같은 달 “한국수력원자력이 공사 기간 준수를 약속한 것이 주요 승리 요인”이라고 보도했으며 이반 얀차렉 주체코 대사 역시 KBS와의 인터뷰에서 “한수원이 제시한 가격이 덤핑이 아닌 공정한 가격”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체코 정부가 발표한 예상 사업비 24조 원은 한국 신한울 3·4호기 예상 공사비보다 2배가량 많다. 이를 덤핑 가격이라 주장한다면 적정가격이 얼마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의원들은 성명에서 “체코 정부가 유럽연합(EU)으로부터 원전 건설을 위해 차입한 금액이 9조 원에 불과해 15조 원이 부족하며, EU가 추가 대출에 난색을 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체코 정부는 원전 건설 재원을 EU가 아닌 채권 발행을 통해 전액 조달할 계획이며 EU는 체코 정부의 재원 조달 방안이 시장 규칙에 위배되지 않음을 확인하고 승인했다. 따라서 EU가 추가 대출에 난색을 표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체코 정부는 5호기와 유사한 방식으로 6호기 재원도 조달할 예정이며 6호기 건설 재원 역시 EU의 승인을 받을 계획이다.
셋째, 성명에는 “스타뉴라 장관이 국가 예산이 원전 건설을 포함한 전략적 투자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정보다. 오히려 스타뉴라 장관은 올 2월 더 많은 원전 건설이 가능하다고 언급했고, 5년간 소요되는 비용을 추가 예산 배정 없이 감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스타뉴라 장관이 밝힌 입장은 전략적 투자를 감당할 수 없다는 주장이 아니라 오히려 추가 원전 건설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넷째, 성명의 “웨스팅하우스와 EDF의 진정서 제출과 관련해 의원들은 우리 정부가 체코 정부의 입장을 몰랐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 웨스팅하우스와 EDF가 체코 반독점사무소(UOHS)에 진정을 제기한 것은 비즈니스 영역에서 흔한 절차이며 체코 정부는 이번 입찰 절차가 전혀 문제가 없다고 일축했다. 체코 당국은 이번 입찰제안서 평가에 200여 명의 법률가가 참여해 법적인 검토를 한 것으로 밝힌 바 있다. 체코 반독점사무소가 웨스팅하우스와 EDF의 이의 제기를 검토하겠다고 한 것은 자연스러운 법적 절차로, 우리 정부가 이를 몰랐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2018년 문재인 대통령도 체코와의 회담에서 한국이 체코 원전 건설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협력을 요청한 바 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국내에서는 탈원전을 추진하면서도 해외 원전 기술 수출을 독려하는 ‘원전 세일즈 외교’를 펼친 것이다. 따라서 이번 체코 원전 사업은 전임 문재인 정부 역시 중차대한 국가적 사업임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3일 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 등 세계 최대 금융기관 14곳이 2050년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해 원자력에 대한 금융 지원을 약속했다. 세계 원자력발전 프로젝트의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는 평가다. 원자력 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여야의 시각차는 있을 수 있지만 최소 1000조 원 이상의 탄소 중립 시장에서 원전 수주의 가능성이 높아진 지금 야당 의원들의 주장은 국익을 걱정하는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어야 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