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통상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관련 기초 데이터를 5년 내 1000개가량으로 늘리기로 했다. 내년부터 데이터 구축에 필요한 예산을 50% 증액 편성했는데 수출 중소기업 등이 비용 절감 효과를 볼 것으로 기대된다. 글로벌 규제의 직접적 대상이 된 배터리 업계와 플라스틱 제조 업계 등은 기초 데이터 확대가 환경 규제에 대응할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1일 정부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환경부는 2028년까지 국가 단위 전 과정 목록 데이터베이스(LCI DB)용 데이터를 1000개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현재 LCI DB에 포함된 데이터가 320개 수준임을 고려하면 5년 사이에 이를 세 배가량 늘리기로 한 것이다. LCI DB 구축 예산 역시 올해 50억 원에서 내년 75억 원으로 50% 증액했다. 이에 따라 내년에는 올해(150개)보다 더 많은 250개의 LCI DB 데이터를 추가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 관계자는 “국회에서도 글로벌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게 LCI DB를 조속히 확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며 “2028년까지 LCI DB를 최대한 빨리 확보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LCI DB는 각 제품의 탄소 배출량을 측정하는 데 쓰이는 데이터다. 원료 채취부터 제품 생산·유통·사용·폐기 등 모든 단계에서 발생하는 탄소량을 계측하는 것이 특징이다. 산업계에 따르면 LCI DB의 중요도는 점점 커지고 있다. 각국에서 탄소 배출량을 제출하도록 하는 통상 규제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대표적이다.
글로벌 탄소 규제가 강화하고 있음에도 국내 LCI DB는 그동안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한국의 LCI DB 내 데이터 수(320개)는 프랑스(5197개), 일본(3993개), 미국(3114개)에 비해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국내 기업은 이 때문에 탄소 배출량 산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ESG 관련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은 해외에 제품을 수출할 때 블룸버그 등 외국 업체가 제공하는 LCI DB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플라스틱 환경 규제 등의 직격탄을 맞은 석유화학 업계도 LCI DB 구축 확대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한 관계자는 “플라스틱 환경 규제 대응을 위해 개별 기업이 아닌 정부 차원의 LCI DB 확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는 업계의 이 같은 요구와 글로벌 추세에 맞춰 LCI DB를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각국에서 공급망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전기차·배터리 산업을 중심으로 데이터 확보에 나서겠다는 설명이다. 다만 데이터 확충과 관련해 보완점도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목소리다. LCI DB 확충 과정에서 기업의 영업 비밀이 새나갈 수 있어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기업들이 원료 배합 비율 등 민감한 공정 자료가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 등을 우려하고 있다”며 “영업 비밀을 보호하는 한도에서 데이터를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구축한 LCI DB가 해외에서 적극 활용될 수 있도록 통상 당국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조영준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장은 “현재는 EU에 제품을 수출할 때는 유럽 업체에서 탄소 배출량을 검증받아야 한다”며 “환경부의 LCI DB가 EU나 미국에서 통용될 수 있도록 협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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