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완성차 회사인 도요타자동차가 전기차 시장 둔화를 이유로 북미 첫 전기차(EV) 생산 시기를 내년에서 내후년으로 연기하기로 했다. 도요타는 2026년 전 세계 EV 생산 목표를 당초보다 50만 대가량 줄였는데 중국산 EV를 겨냥한 각국의 보호무역 정책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3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도요타는 미국 남부 켄터키주의 자사 공장에서 신형 3열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생산 시기를 내년 말에서 2026년 초로 연기하기로 했다. 닛케이는 “일본 자동차 업체가 북미 시장에서 EV 생산 계획을 변경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도요타는 북미 지역에서 최종 생산된 EV를 대상으로 세제 혜택을 주는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겨냥해 북미 첫 EV 생산공장에 투자하기로 했다. 총투자액만 13억 달러(약 1조 7000억 원)에 달한다. 하지만 올해 글로벌 EV 시장의 수요가 둔화하자 판매 목표를 내려 잡고 북미 생산 계획도 조정한 것이다.
도요타는 2030년까지 북미에서 럭셔리 브랜드인 렉서스의 신형 SUV를 생산하려던 계획도 취소했다. 대신 일본에서 만들어 북미에 수출하기로 했다.
도요타는 부품 업체에 해당 내용을 통지하며 2026년 전 세계 EV 생산 목표도 올 8월 예측 당시 150만 대에서 50만 대 줄어든 100만 대로 하향했다. 도요타의 EV 판매량이 지난해 약 10만 대, 올해 7월 말 현재 8만 대에 그친 데 따른 것이다.
전 세계 EV 시장은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이 이어지고 있다. S&P글로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글로벌 EV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58% 증가했으나 올해에는 9%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닛케이는 EV 시장의 성장을 막는 걸림돌로 저가 중국산 EV의 범람에서 자국 산업을 지키기 위한 각국의 보호주의 정책을 지목했다. 9월 말 미국 정부는 중국산 수입 EV에 대한 징벌적 관세를 25%에서 100%로 인상했다. 유럽연합(EU)은 4일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 인상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에 나선다. 기존 10%인 관세에 17.0~36.3%포인트의 상계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에 대한 투표가 이뤄지는 것이다. 문제는 각국의 보호무역 조치로 중국이 독점하고 있는 저비용 LFP(리튬·인산·철) 전지의 공급망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산 EV의 평균 가격은 2019년 5만 달러 선에서 올해 6만 달러까지 올랐고 3만 달러 안팎의 중국산과의 가격 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됐다.
닛케이는 “EV의 판매 가격이 여전히 높은 가운데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가계 예산에 대한 압박까지 가중돼 신차 구매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도요타는 북미 EV 시장이 장기적으로는 성장할 것으로 보고 투자를 이어나간다는 방침이다. 다른 일본 자동차 제조 업체들도 북미 EV 생산에 투자하고 있다. 혼다자동차는 캐나다에 새로운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약 1조 엔(68억 달러)을 투자해 내년 오하이오 공장에서 EV 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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