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전쟁을 계기로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이스라엘의 정보력이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10월 가자전쟁 발발 이후 팽팽하게 대치하던 이스라엘과 친(親)이란 세력 간 힘의 균형이 이스라엘로 기운 것도 정보력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실상 막을 내린 스파이를 통한 정보전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셈이다.
전쟁 발발 이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 지휘부를 타깃으로 삼았다. 수뇌부를 제거해 무장 정파 조직을 와해시키는 것은 물론 전쟁의 주도권을 쥐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구심점을 잃은 만큼 전쟁이 끝난 뒤에도 쉽사리 조직 재건을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목적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하마스와 헤즈볼라 고위급과 핵심 지휘부 대부분이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사망하면서 사실상 궤멸 상태에 놓였다. 여기에는 해외 정보기관인 모사드, 국내 정보기관인 신베트 같은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역할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군사 전문가들은 사실상 ‘이스라엘 정보전의 승리’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이스라엘은 2006년 제2차 레바논 전쟁 이후 정보 수집 방식에서 대대적인 혁신에 나섰다. 당시 정보전의 실패로 레바논을 침공했다가 막대한 피해를 보고 퇴각한 이스라엘은 이후 헤즈볼라의 통신을 감청하고 지휘관 등 주요 인사들을 추적하는 데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다. 이스라엘의 신호 정보 분석 8200부대와 군사정보국 아만은 북부 레바논 접경지에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수집했다. 시각 정보 분석 전담인 9900부대는 이렇게 모인 방대한 데이터를 추려 핵심 시설을 식별해 정확한 표적 타격을 할 수 있는 이미지 시스템을 구축했다.
스파이 기능을 전담하는 정찰위성, 세계적 수준의 드론 기술, 휴대폰을 도청 기기로 바꾸는 사이버 해킹 능력 등 범접할 수 없는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정보전에 나섰다는 평가다. 이스라엘 전직 고위 정보 장교인 미리 아이신은 “지난 18년 동안 이스라엘 정보부는 헤즈볼라의 군사 조직을 넘어 이란혁명수비대와의 커넥션, 헤즈볼라 수장 나스랄라와 시리아 대통령과의 관계 등 헤즈볼라 조직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인프라를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정보 역량이 첫 결실을 맺은 것은 2008년이다. 모사드는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협력해 시리아에서 헤즈볼라의 최고 공작원인 이마드 무그니야를 암살하는 데 성공했다. 2020년 1월 아만은 이란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가 나스랄라를 만나기 위해 레바논 베이루트로 이동하는 경로를 포착했고, 해당 정보를 넘겨받은 미국 정보 요원이 바그다드국제공항에서 솔레이마니를 드론 공격으로 암살했다.
가자전쟁 이후 벌어진 암살 작전은 십수 년간 쌓은 정보 역량을 바탕으로 은밀하게 실행됐다. 7월 31일 이란의 심장부인 수도 테헤란에서 하마스 최고지도자 하니예를 암살했던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던 하니예는 머물던 숙소에서 폭발물이 터지면서 사망했다. 수개월 전 미리 설치된 폭탄이 원격 조정으로 폭발한 것으로 추정되며 배후로 이스라엘이 지목되고 있다. 9월 27일 나스랄라의 사망도 이스라엘이 사전에 입수한 정보를 통해 정확한 시간에 맹폭을 가한 덕분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이를 두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40년간 헤즈볼라와 싸워온 이스라엘이 최근에야 전세를 역전했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한편 이스라엘과의 전면전을 앞둔 이란은 내부 정보 유출로 인한 공격이 이어지자 대대적인 정보원 색출 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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