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사람보다 점수가 낮으면 안 되는데…초등학교 이후 처음이에요.” 받아쓰기를 마친 김 모 씨는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성적이 나온 후 그는 수상은 못했지만 다행히 상위권이라고 귀띔했다. 다른 한 참가자는 “지금이라도 배웠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뜻깊은 대회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4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흥복전 마당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국어원이 주최하고 국어문화원연합회가 주관해 내외국민 130명이 참가한 ‘제1회 전 국민 받아쓰기 대회’가 열렸다. 일부 TV 프로그램 등에서 이벤트를 한 것을 빼고 공식 받아쓰기 행사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문체부는 설명했다. 제578돌 한글날을 기념하는 2024 한글주간(4~10일)의 첫날 행사로 진행됐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올해 한글주간은 ‘괜찮아?! 한글’을 주제로 했다”며 “이는 무분별한 외국어 남용과 과도한 줄임말이나 신조어 등으로 한글이 홀대받고 있는 현 실태를 돌아보고 한글이 갖는 의미를 되새기며 소중한 최고의 문화 자산인 한글의 가치를 체험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이번 받아쓰기 대회에 우리 국민 신청자는 총 3320명이었는데 이 중에서 지역 예선을 거쳐 120명이 꾸려졌고 이들이 이날 본선에 나왔다. 이외에 일본 출신 방송인 후지모토 사오리와 독일 출신 방송인 다니엘 린데만 등 10명의 외국인 특별 참가자가 보태졌다.
280자 정도의 2개 제시문을 듣고 원고지에 적는 방식이었는데 쉽지 않았다는 평가다. 제시문은 “그는 택견에 있어서 만치는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인물이다. 스스로를 별 볼 일 없다며 과소평가하던 그는 펜실베이니아에서 열린 워크숍에 느지막이 참석했다”는 식이었다.
출제된 문장에는 ‘욱여넣다’ ‘객쩍다’ ‘오도카니’ ‘숫제’ 등 일상적으로 쓰이면서도 헷갈리기 쉬운 낱말들이 등장했고 ‘펜실베이니아’ ‘워크숍’ ‘브로슈어’ 등 한글 표기가 어려운 외래어들도 포함돼 변별력을 높였다.
발음이 좋기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배우’ 출신 유 장관이 영상에서 글을 낭독했고 이어 현장에서 모 방송국 아나운서들이 이를 되풀이했다. 문제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출제됐다고 한다. 이날 린데만은 유창한 한국어로 “다시는 안 보고 싶다”며 “문제가 많이 어려웠다”고 토로했고 사오리 역시 “제가 (한국어에) 꽤 자신이 있었는데 자신감이 사라졌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우승자에게 수여하는 문체부 장관상은 이재명 씨에게 돌아갔다. 유 장관에게 직접 호명된 으뜸상 수상자 이 씨는 스스로를 “초등학교에서 애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문제가 굉장히 어려웠지만 다행히도 제가 공부한 부분에서 많이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상금 300만 원을 부상으로 받았다.
국립국어원은 “내년에 또 만나자”며 2회 대회를 예고했다. 한글주간에는 한글문화산업전·학술대회·공연 등 문화 행사가 잇따라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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