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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재의 칩 비하인드] ‘한국판 엔비디아’ 나오려면

이혁재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 소장





현재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엔비디아가 창업된 해는 1993년이다. 당시는 반도체 산업의 제왕이라고 불렸던 인텔의 전성 시대였다. 이 무렵 차세대 컴퓨터 기술로서 병렬처리 방식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병렬처리 구조란 비교적 간단한 중앙처리장치(CPU) 반도체를 많이 연결해 동시에 작동시킴으로써 인텔의 CPU보다 훨씬 빠른 동작 속도를 가능하게 하는 혁신적인 기술이었다. 미국 정부는 이러한 병렬처리의 가능성을 보고 연구개발에 많은 지원을 했고, 다수의 벤처 회사들은 앞다퉈 상용 제품을 출시했다.

하지만 1990년대 당시 설립된 병렬처리 컴퓨터 회사들은 대부분 인텔을 극복하지 못하고 파산하거나 다른 회사에 합병됐다. 인텔의 소프트웨어 환경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이 병렬처리 컴퓨터용 새로운 소프트웨어 환경에 거부감을 느낀 것도 실패의 중요한 원인이었다.

엔비디아가 자체적인 소프트웨어 개발 환경인 ‘쿠다(CUDA)’를 개발한 시기는 2006년이다. 그때 비로소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위한 소프트웨어 개발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 ‘쿠다’가 바로 오늘날 엔비디아 경쟁력의 원천 기술이 됐고 다른 인공지능 반도체 회사들이 엔비디아를 뛰어넘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기술 장벽이 되고 있다.



비록 1990년대 병렬처리 컴퓨터 회사들이 인텔을 극복하지 못했지만 그때 미국 정부의 지원이 헛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당시 미국 정부는 병렬처리 연구개발을 위해 기업 뿐만 아니라 대학도 함께 지원했다. 특히 병렬처리 컴퓨터 회사가 개발한 제품을 대학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산학협력을 지원했다. 이러한 정부 지원 덕분에 병렬처리 기술은 발전을 거듭해 엔비디아의 GPU 및 ‘쿠다’ 개발에 중요한 기반이 됐다.

이러한 병렬처리의 사례는 우리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 방향에 대한 시사점을 준다. 엔비디아가 오늘날의 성공을 이루기까지 창업으로부터 약 30년, ‘쿠다’라는 소프트웨어 환경 개발부터는 약 15년이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정부의 지원이 당장의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축적된 기술이 성공에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엔비디아와 같은 기업의 탄생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선도형 연구개발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선도적인 기업이 대학에서 창업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연구개발 사업이 아래와 같은 방향으로 지원될 필요가 있다.

첫째, 대학 구성원들이 창업 기술을 위한 연구 역량을 강화할 수 있게 하는 산학협력 지원이 필요하다. 대학에서는 일반적으로 학계에서 이루어지는 연구 동향은 잘 파악하지만 산업계의 최신 기술에 대한 접근이 제한적인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대학이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파악하고 해결하는 연구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성공적인 창업을 위한 연구의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10년 이상 연구자가 하고 싶은 연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정부의 장기간 지원이 필요하다. 연구 역량이 강화되더라도 연구 성과를 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가 있다. 병렬처리 컴퓨팅 연구 지원이 엔비디아의 성공으로 이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성공의 가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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