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맞춤 남사당 바우덕이 축제(바우덕이 축제)’는 지난 2001년 시작한 이래 경기 서남권을 대표하는 가을축제로 명성을 쌓아왔다. 축제 기간 동안 인구 20만 소도시 안성시에는 수십만 명의 인파가 몰린다.
바우덕이 축제는 지난해 9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해 선정하는 25개 ‘2024~2025 문화관광축제’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려 1100여개에 달하는 전국의 지역축제 중 최상급의 평가를 받았다. 여타 대도시들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치르는 행사들을 능가하는 국가대표급 축제의 위상을 획득한 셈이다.
그렇다면 바우덕이 축제만의 특별한 경쟁력은 무엇일까.
지역 축제는 통상 지역 이미지 제고와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시도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대다수 행사는 △차별화된 핵심 브랜드 부재 △바가지 논란 △시민참여 미흡 △지역파급 효과 미미 등의 비판을 받고 있다.
바우덕이 축제 개막 이틀째인 지난 4일 오후 안성맞춤랜드 일대에서 서울경제가 만난 대다수 시민들은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저마다 의견을 내놓았다.
평택에서 초등학생인 두 딸아이와 왔다는 김모(39·여)씨는 중앙무대에서 펼쳐진 안성시립 바우덕이 풍물단의 줄타기 한마당을 인상 깊게 봤다고 말했다.
김씨는 “수천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펼쳐지는 아슬아슬한 줄타기 공연이 인상적”이라며 “가슴 졸이는 와중에 줄 타는 이(어름산이)의 재담이 좋았다. 고리타분하지 않고 아이들도 기분 좋게 웃을 수 있는 리드가 좋았다”고 말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방문이라는 그는 “(줄타기 공연을)민속촌 같은 곳에서도 볼 수 있지만 여기서는 규모, 주변 환경, 관중들의 호응과 어우러지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낸다”며 “농악이 낯설 수 있는데 안성에서 태어나 남사당패의 여성 꼭두쇠로 활약한 조선시대 바우덕이의 이야기를 같이 들려주면 아이들이 이해를 더 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안산에서 징검다리 연휴를 즐기러 왔다는 30대 커플은 비보이그룹 ‘아너 브레이커즈’의 댄스공연이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다고 전했다. MZ세대 즐기는 힙합댄스에 우리나라 전통 탈춤과 부채춤을 가미한 색다른 무대는 전통과 현대가 어떤 식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지를 간단하게 보여준다고 호평했다.
중장년층들은 지역 농특산물 할인 판매에 큰 만족감을 드러냈다.
아내와 함께 구이와 국거리용으로 안성한우를 한 보따리 산 강모(52)씨는 “안성한우가 횡성한우 못지않게 질 좋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시중 가격보다 대략 30~50%는 싼 것 같다”며 “공연구경도 구경이지만 요즘 같은 고물가에 한우를 이렇게 많이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고 말했다.
아내 김모(50)씨 역시 “안성햅쌀 4kg을 1만5000원에, 송화버섯 4kg을 2만원에 샀다”며 “대형마트 할인코너 가격과 비교해도 더 싼 것 같다. 용인에서 왔는데 기름 값이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야시장 없는, 바가지 없는 착한 축제’의 명성은 이날도 재확인됐다.
먹거리장터에서 8000원짜리 선짓국에 1만 원짜리 도토리묵무침을 곁들여 막걸리 잔을 기울이던 70대 남성 3명은 “봄 가을로 친구들하고 나들이 가는데 소일거리인데, 여기 축제는 주머니 속사정 걱정 없이 올 수 있는 몇 안 되는 축제”라며 “이 정도 가격에 질이라면 젊은 사람들도 마음 편하게 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우덕이 축제를 처음 찾은 시민들은 아이들과 어른 모두 참여할 수 있는 무료체험 행사가 중앙무대를 중심으로 곳곳에서 쉼 없이 열리는 것에 놀라워했다. 대부분의 지역축제에서는 최소 1만원 최대 3만 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해야만 30분 남짓 소소한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아이를 안성시 축산과에서 주관하는 에그아트와 페이스페인팅 체험장에 풀어놓은 38세 동갑내기 부부는 “수원에서 왔는데 무료행사라고 해서 쓸데없이 시간 죽이는 게 아니고 알찼다, 일 하시는 분들도 내내 웃는 낯으로 아이들과 어울려 지도를 잘 해줘 만족한다”고 말했다. 부부는 “음료수, 사골곰탕 등을 약간의 체험 활동을 곁들이면 무료로 받을 수 있어 반갑다. 라면뽑기행사도 1000원만 내면 라면 2개를 뽑아갈 수 있으니 남는 장사”라며 밝게 웃었다.
안성시 농협 관계자는 “지역축제에 대한 비판이 뭔지를 잘 알고 있다"며 "김보라 안성시장님도 강조하시는데 눈 앞 이윤을 남기기 보다는 내년, 내후년에도 또 올 수 있는 축제의 단골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올해 1월 문체부가 주관하는 ‘2025년 동아시아문화도시’로 경기도에서는 처음 선정된 안성시는 바우덕이 축제의 일환으로 중앙 무대 인근 호숫가에서 ‘안성문화장 페스타’를 함께 열고 있다. 조선시대 3대 장(場)중 하나였던 안성장을 현대적인 팝업스토어로 부활시켜 목판화가, 공예가, 염색장 등 예술가들이 시민들과 직접 호흡하도록 했다. 작품전시와 예술 체험, 그리고 판매가 동시에 이뤄지면서 참여 예술가들도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목판화가 이윤엽(56)씨는 민중미술계를 대표하는 예술가 중 한 명이면서도 1인 당 고작(?) 5000원을 받고 목판화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10년 전 보개면 남풍리로 이사한 이래 처음으로 시 행사에 참여하게 됐다는 이씨는 “안성시 문화장인으로 선정돼 문화관광과에서 이번 행사 참여를 요청했을 때 예술가 입장을 많이 생각해 준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참여 절차도 이리저리 얽매이기 싫어하는 예술가들을 위해 간소했고, 행사를 주관하는 분들이 작가들을 귀하게 대우하는 느낌을 받았다. 시민들과 직접 호흡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씨의 선배인 목판화가 류연복(66)씨는 “안성에 33년째 살면서 바우덕이 축제의 성장을 내내 지켜봤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축제가 풍성해지고 있다"며 “축제란 모름지기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즐겨야 진짜 축제다. 바우덕이 축제는 이제 주민들의 삶에 뿌리를 잘 내린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축제는 동유럽과 동남아시아, 중남미 국가 예술인들이 참여하는 CIOFF(세계민속협의회) 세계민속공연, 세계인 어울림 한마당, 유네스코 특별공연 등을 더해 특별한 관심을 모았다. 전국 최고수준의 기획력과 운영이 더 이상 ‘내수용’ 축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20년이 넘은 내력의 축제가 이제 ‘세계화’란 또 하나의 도약대에 오른 것이다. 바우덕이 축제는 일요일인 6일 아쉬운 장을 마감한 뒤 내년 가을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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