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 사태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국립대병원들이 올들어 정부에 3000명에 가까운 간호사 증원을 요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 중 정부에서 실제 승인한 인원은 요청 인원의 30%에도 못 미치는 800명 수준에 그쳤다. 인력 부족으로 인한 높은 업무강도탓에 저연차 중심으로 올해 8월까지 700명이 넘는 간호사가 병원을 떠나면서 필수의료 현장의 피로가 빠르게 누적되고 있는 실정이다.
6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서지영 국민의힘 의원실이 충남대병원을 제외한 전국 14개 국립대병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국립대병원들은 정부에 총 2739명의 간호사 증원을 요청했다. 정기 증원 신청 시기가 돌아오지 않아 아직 정부에 인력 확대 요청을 하지 않은 전남대병원은 포함하지 않은 수치다.
이는 증원 요청이 유독 적었던 지난해(460명)의 6배에 달한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요청이 크게 늘었던 2020년(2385명), 2021년(1232명), 2022년(2484명)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많다.
다만 실제 기획재정부가 증원을 승인한 인원은 병원들이 요청한 인원의 29.6%인 811명에 그쳤다. 지난 2020년 53.1%에서 2021년 42.8%, 2022년 44.8%, 2023년 32.8% 등으로 하락세를 이어오다가 올 들어 30% 선마저 내줬다. 현행법상 국립대병원은 인력 증원 시 교육부와 협의를 거쳐 기재부의 최종 승인을 받아야 한다.
올 초 전공의 집단사직 이후 필수의료 현장에서 간호사에 수요가 늘어나고 있지만 실제 충원은 절반도 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실제 올 들어 일선 상급종합병원에선 전공의 자리를 메꾸기 위해 기존 간호사 상당수가 진료지원(PA)로 이동하며 연쇄적인 인력난이 발생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빅5’가 신규 간호사 채용을 최근 시작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내년 6월부터 간호법이 시행되면서 PA간호사들의 역할이 명확히 규정되면 그 수요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상급종합병원에서 전문의·PA간호사 인력 비중을 늘리겠다는 정부의 목표와도 괴리가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전공의 의존도를 현재 40%대 수준에서 20% 이하로 낮추고 대신 전문의와 PA간호사 위주로 인력구조를 바꾸겠다는 개혁안을 제시한 바 있다.
다만 병원들은 올해 증원 신청이 늘어난 게 의료공백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 국립대병원 관계자는 “매년 병원 인력 상황을 고려해 증원 신청 인원을 유동적으로 조정하고 있다”면서도 “지난해 10월 간호등급제(간호관리료 차등제) 도입으로 인해 신청 인원 수를 늘린 것으로 전공의 사직 사태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간호등급제란 병원이 간호 인력을 많이 배치할수록 재정 지원을 많이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한편 높은 노동 강도에 14개 국립대병원에서 올 들어 8월까지 725명이 퇴사하는 등 간호사 이탈 현상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 421명(55%)는 입사 3년차 이하의 신입 간호사로 집계돼 특히 저연차 중심으로 사직 행렬이 이어졌다. 신규 간호사들이 퇴직을 결심하게 되는 이유로는 높은 노동 강도와 이에 따른 교육 부실이 꼽힌다.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김 모(24) 씨는 “요즘 의료공백으로 중환자실 환자가 너무 많아 아직 사수로부터 독립도 하지 않았는데 환자 3명을 혼자서 본다”며 “퇴근 후 공부에 막내 일까지 하려니까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마취과에서 근무하다 퇴사한 박 모(24) 씨도 “간호 인력 부족으로 고연차가 저연차를 기다려 줄 여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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