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은 한국 경제와 외교·안보 지형에도 상당한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워싱턴에 있는 석학들은 미 대선 결과가 한국에 미칠 영향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으로 9월 23~27일(현지 시간) 워싱턴에서 한국 기자단과 만난 전문가들은 “누가 대통령이 되든 대중 강경책이 이어질 것”이라면서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선에 대비해 다른 나라들과 연대하는 등 다양한 대비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트럼프 누가 되든 공급망을 포함한 경제안보 분야에선 과거와 비슷한 정책이 이어질 것”이라고 봤다. 공급망에서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바이오, 인공지능(AI) 등 미래 핵심 산업 분야에서 중국의 약진을 차단하는 정책은 지속된다는 의미다.
여한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연구원도 “해리스가 대중국 정책을 펴는 태도에서 상대적으로 상냥한 반면 트럼프가 터프할지는 몰라도 수위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짚었다. 최근 미국이 중국산 부품을 사용한 커넥티드 자동차의 미국 내 수입을 금지하겠다고 밝히는 등 민주당이 트럼프 행정부 때보다 강경한 대중국 산업·무역정책을 펴온 것을 고려하면 중국에 대한 압박은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미중 갈등 속에서 한국의 대응 방안에 대한 조언도 쏟아졌다.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여 연구원은 “미국이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자국 제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힘을 쏟고 있지만 미국 혼자서는 어렵기에 반드시 파트너국이 있어야 한다”며 한국이 최적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는 “미중 지정학적 갈등과 미국 내 제조업 부흥을 위한 산업정책, 미국의 파트너국을 찾아야 한다는 필요성이 한국의 이익과 완벽하게 일치하기 때문에 양국 간 경제협력 잠재력이 굉장히 높다”고 기대했다.
트럼프 2기에 대한 전망과 조언도 나왔다. 트럼프는 전 세계를 상대로 보편 관세를 매기는 등 미국을 최우선으로 하는 강력한 보호무역 조치를 취할 것으로 점쳐진다. 제프리 숏 PIIE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2기를 대비해 각 나라들이 공동 대응을 위한 컨설팅을 이미 진행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주요국이 트럼프 1기 때는 전에 보지 못한 강경한 무역정책에 당황하며 각자도생을 했지만 이번에는 2기에 대비해 공동 대응 전략을 짜고 있는 만큼 불필요한 대립은 피하고 현실적인 이익을 취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외교 안보 분야와 관련해 차 석좌는 “미 정부는 한반도의 비핵화 목표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비핵화가 불가능하다는 것도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해리스가 당선되면 현재의 한미일 3자 협력과 대북 압박이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았다. 트럼프 당선 시에는 북미정상회담이 재개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다만 CSIS의 한국 담당 선임연구원 앨런 김은 “과거와는 상황이 달라진 만큼 고려해야 할 전제 조건이 있을 것”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드러냈다. 2018~2019년 싱가포르, 베트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때는 지금처럼 북러가 전략적 관계를 맺지 않았고 대북 제재에 중국과 러시아도 동참해 제재의 강도가 강했다. 하지만 지금은 러시아가 직접 북한에 식량·석유를 제공하고 국제 제재 역시 러시아에 가로막혀 예전처럼 강하지 않다. 김 연구원은 “북한 지도자 입장에서 봤을 때 굳이 트럼프와 대화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회의론을 품을 수 있다”며 “트럼프가 매력적인 제안을 가져온다면 대화를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굳이 대화에 나설 필요성을 못 느낄 것”이라고 봤다. 그는 “(그럼에도 북미 회담이 열려) 만약 북미가 한국을 거치지 않고 양국 간에만 합의를 이루면 한국과 일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한국 내에서도 핵무장 관련 논의가 많이 일어날 것”이라고 봤다. 트럼프가 한국을 패싱한 채 북한의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하고 제재 완화를 단행하는 등 예상 외의 행보를 밟는다면 국내에서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강경한 여론이 거세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았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