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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이시바 내각과 한일관계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지난달 27일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이 당선돼 일본의 102대 신임총리로 지명됐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예고하며 이시바와 끝까지 접전을 벌였던 강성보수 다카이치 사나에가 아닌 온건파 이시바가 당선되면서 한국은 일단 한숨을 돌린 모양새다.

이시바 총리는 급진적 안보관을 가졌지만 역사인식은 온건보수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피해자가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사죄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일본이 과거 한국을 식민지배했던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전쟁책임도 언급한 바 있다. 오랜 기간 해결되지 못한 역사문제에 대한 한국의 기대감이 높아지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이시바 총리는 카레와 라멘을 즐기고, 프라모델을 만들기를 좋아하고, 애니메이션·아이돌·철도 마니아이기도 하다. 과거 그가 만화 드래곤볼에 나오는 마인 부우 캐릭터 분장을 하고 나온 모습도 알려지면서 어딘지 모르게 친근감마저 든다.

그런데 이렇게 기대감과 친근감이 높아질수록 불안감도 같이 높아진다. 풀리지 않는 한일갈등 속 이시바 총리가 과연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까.



이시바 총리가 지금까지 했던 발언을 살펴보면 그는 ‘정론가(正論家)’이자 ‘이상가(理想家)’에 가깝다. 논리성과 합리성에 기반하지만 현실감은 떨어진다. 오랜 기간 이시바 총리의 지론이었던 ‘아시아판 나토(NATO)’만 해도 논의의 여지는 있으나 실현은 요원하다. 역사 문제도 마찬가지다. ‘납득’과 ‘공감’의 정치를 슬로건으로 내세울 만큼 상대를 경청하고 차분히 설명하는 성격 덕분에 한국에 불편한 발언이나 도발적인 행동은 하지 않겠지만 그것이 곧 한국의 입장과 같다는 의미는 아니다.

더욱이 현재 이시바 총리의 약한 지지기반을 생각하면 더욱 쉽지 않을 수 있다. 결선투표에서 이겼지만 1차 투표에서 그를 지지한 동료 국회의원들은 368명 중 46명에 불과했다. 비록 1표 차이였지만 민심을 알 수 있는 당원투표의 1위는 강성보수인 다카이치였다. 이달 1~2일 취임 직후 조사된 이시바 정권 지지율은 51%에 불과했다. 이는 기시다 내각 출범 당시보다 낮은 지지율이다. 이런 정치지형 속에서 이시바 총리가 과연 ‘국회의원의 한 사람’으로 소신을 밝혔던 과거의 발언을 ‘자민당의 대표’로서, ‘일본의 총리’로서 이어갈 수 있을지 미지수다.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을 견고한 협력의 제도화를 염원했지만 결국 리더십의 변화가 가져올 불안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한일관계는 숙명처럼 역사 문제가 발생하면 다른 모든 이슈가 덮이는 현실에 놓여있다. 그러나 양국은 역사 문제 외에도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가 너무 많다. 불안정한 국제정세 속 외교·안보·경제·사회문제가 산적해 있다.

이시바가 총리가 돼서 다행이 아니라 누가 총리가 되더라도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고 의연할 수 있는 한일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어렵게 만들어온 현재의 한일관계 개선의 모멘텀을 이어나가야 한다. 지나친 기대감을 경계하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균형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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