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일각과 야당에서 상법상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시키는 방안이 추진되는 가운데 이 같은 입법을 추진할 경우 기업 투자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상법 개정 논의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6월과 8월 “투자자 보호가 미흡하다는 점이 밸류업의 걸림돌”이라고 언급하면서 본격화했다. 주무 부처인 법무부는 반대로 기울어져 있지만 기획재정부가 중립적 입장이어서 정부의 정책이 어떻게 정리될지 주목된다. 이런 와중에 더불어민주당은 이달 4일 증시 부양 관련 토론회를 열고 금융투자세 시행 문제에서 여권에 ‘유예’ 등으로 양보하는 대신 상법 개정을 얻어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 박주민·민병덕 의원 등이 이미 관련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현행 상법 382조는 ‘이사는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를 수정해 주주를 충실 의무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은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미국 연방 의회에서 제정된 모범회사법은 이사의 의무 부담 대상을 주주가 아닌 ‘회사’로 한정했다. 캘리포니아·델라웨어 등 극소수 주는 자체 주법으로 주주를 이사의 의무 부담 대상에 포함했지만 나머지 대다수 주들은 모범회사법을 따르고 있다. 독일·일본·캐나다 등 주요 선진국들도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가 아닌 회사로 규정했다.
세계적 추세와 달리 우리 정부의 일부 부처와 야당은 국내 증시 부양, 소액 주주 보호를 내세워 상법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법 개정이 이뤄지면 기업 경영진은 단기 손실을 주장하는 일부 주주들로부터 배임죄 소송 위협에 시달리게 된다. 그 결과 대규모 자본을 장기간 쏟아붓는 초격차 기술 개발, 인프라 투자, 인수·합병 등이 어렵게 돼 ‘기업 가치 훼손-증시 추락-주주 피해’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글로벌 정글에서 생존 경쟁을 벌이는 우리 기업들의 투자 발목을 잡는 과도한 개입이 없도록 상법 개정에 대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진정한 증시 부양과 투자자 보호는 연구·투자 규제를 풀어 기업의 본원적 가치를 높이는 것임을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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