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나들이 명소로 인기를 끌다가 생태계 위해성 2급 평가를 받으면서 급감했던 핑크뮬리 군락지 면적이 올 들어 다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코스모스를 닮은 노란빛을 띠어 미관상으로는 예쁘지만 역시 동일한 등급으로 평가받은 큰금계국의 조성 면적도 최근 몇 년 새 대폭 증가하는 추세다. 환경부가 매년 자제 권고를 내리고 있지만 지방자치단체들이 관광객 유치를 위해 무분별하게 식재를 늘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환경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전국 지자체 주도로 조성한 핑크뮬리 면적은 2만 4950㎡로 지난해(2만 1987㎡) 대비 13.47% 늘었다. 2019년 11만 2000㎡에서 2020년 7만 537㎡, 2021년 3만 220㎡ 등 감소세를 보이다가 올 들어 반등했다.
‘분홍 억새’로도 불리는 핑크뮬리는 미국 중서부가 고향인 식물로 가을철에 만개하면 특유의 분홍빛 물결을 이룬다. 한국에서는 2010년대 중반 제주도의 한 생태공원에서 조성한 핑크뮬리밭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인생샷 명소’로 유명해지면서 인기를 끌었다. 문제는 핑크뮬리가 억새류 특성상 생명력이 매우 강하고 빠르게 확산해 토종 식물을 밀어낼 위험이 크다는 점이다. 이에 국립생태원은 2019년 외래종 정밀 조사를 통해 핑크뮬리를 생태계 위해성 2급으로 평가했다. 2급을 받은 식물은 당장은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증거는 없으나 향후 위해성이 높아질 가능성이 커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다.
환경부 차원에서도 식재 자제 권고를 내리면서 제주도에서는 핑크뮬리밭을 아예 갈아엎는 등 지자체들이 자정에 나서기도 했지만 최근 들어 일부 지자체들이 관광객 유치를 위해 다시 식재를 늘리는 모양새다. 올 들어 경북(50㎡→3810㎡), 경기(125㎡→500㎡), 충북(280㎡→500㎡) 등이 핑크뮬리를 추가로 심었고 전남은 600㎡를 새로 조성했다. 전국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보유한 대전은 4년 연속 1만 6000㎡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지자체들이 핑크뮬리 대체재로 많이 심어왔던 귀화식물(우리나라에 옮겨와 여러 세대를 반복하며 토착화된 식물)인 댑싸리는 지난해(6만 8596㎡)까지 꾸준히 조성 면적이 늘다가 올해 5만 969㎡로 25.69% 급감했다.
지자체들은 역시 위해성 2급 식물로 분류되는 큰금계국도 더 심고 있다. 지자체가 조성한 큰금계국밭 면적은 2021년 2만 8872㎡에서 2023년 3만 3196㎡로 급증했고 올해 9월 기준으로도 3만 3080㎡로 비슷하다. 북아메리카 대륙이 원산지인 큰금계국은 코스모스를 닮은 노란빛으로 여름철 인기가 높지만 번식력과 생존력이 강해 주변 토종 식물들의 생태계 다양성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환경부 측은 “올해도 지자체들에 핑크뮬리·큰금계국 식재 자제 권고를 내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위해성 2급 식물은 법정 관리종인 1급과 달리 식재를 강제로 막을 수 있는 근거가 없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립생태원 측은 “자생종 보호가 필요한 지역에서는 무분별한 식재를 자제·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의원은 “우리나라 생태계에 미칠 영향이 아직 파악되지 않은 외래 식물들이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곳곳에서 늘어나고 있다”며 “향후 생태계 균형을 깨뜨리고 생물 다양성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으므로 환경부는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식재를 자제해줄 것을 적극 홍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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