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가 국내 벤처투자 생태계를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선진 벤처투자 시장 도약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방안에는 국내 벤처투자 규모를 2023년 11조 원 수준에서 2030년에는 20조 원으로 확대하고 글로벌 투자 유치 규모는 지난해 2000억 원에서 2030년 2조 원으로 늘리겠다는 목표가 담겨 있다.
주요국의 벤처투자 시장 규모는 2023년 기준 미국 1706억 달러(약 300조 원), 유럽 619억 달러(약 83조 원) 규모로 우리나라 84억 달러(약 11조 원)와는 절대적 투입 자본의 양에서 차이가 존재한다. 국내 벤처투자 시장 규모를 연간 200억 달러(약 27조 원)로 성장시켜야 벤처기업의 스케일업 지원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방안이 국내 벤처투자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우리나라 벤처 생태계가 세계 수준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특히 신규 벤처투자의 참여 주체를 확대하기 위해 퇴직연금의 벤처투자 허용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점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현재 퇴직연금은 벤처펀드에 출자할 수 없다. 벤처 업계는 퇴직연금의 벤처투자 허용을 건의해왔으나 정부는 투자 손실의 위험 등 안정성을 이유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벤처펀드는 일각의 고위험 투자라는 인식과 다르게 꾸준한 수익률을 나타내고 있다. 2014~2023년까지의 국민·사학·공무원 연금의 벤처펀드 출자 수익률은 각각 13.9%, 10.1%, 9.2%이며 과학기술공제회는 11.9%, 고용보험기금은 무려 17.2%의 수익률을 실현했다.
모태펀드 역시 지난 19년간 벤처펀드 출자 수익률이 평균 7% 수준에 이른다. 국내외 경제의 복합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최근 10년간 연평균 수익률도 9.1%를 기록하고 있다.
반면 퇴직연금의 운용 수익률은 주요 연기금·공제회 등의 벤처펀드 출자 수익률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 현황에 따르면 퇴직연금의 지난 10년간 연환산 수익률은 2.07% 수준에 불과하다.
해외에서도 퇴직연금은 벤처펀드 출자에 활용되고 있다.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퇴직연금 사용자 자산과 관련된 규제 외에는 별도의 퇴직금 운용 규제가 없다. 특히 지난해 7월 영국에서는 퇴직연금 사업자 9곳이 2030년까지 퇴직연금 자산의 5% 이상을 비상장기업에 투자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은 2023년 말 기준 382조 원 규모로 매년 상당한 적립금이 퇴직연금으로 쌓여가고 있다. 벤처 업계는 퇴직연금 중 53.7%를 차지하고 있는 확정급여형(DB형)의 일부라도 벤처투자에 활용된다면 벤처투자 시장 확대는 물론 벤처 생태계 활성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퇴직연금의 벤처펀드 출자 허용은 국민들의 안정적인 노후 준비와 국가 경제 전반에 이득이 되는 ‘윈윈’ 전략이 될 수 있다.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골든 타임’이라는 것이 있다. 정부는 현시점이 우리나라 벤처투자 시장을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국가 경쟁력을 강화할 ‘골든 타임’임을 잊지 말고 조속한 시일 내에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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