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려아연에 대한 지분매입 경쟁이 뜨겁다. 한 쪽은 고려아연의 지분 15.6%를 보유한 최윤범 회장을 포함한 현 경영진(최회장측은 우호지분을 포함하면 약 34%를 보유) 측이고, 반대 쪽은 특수관계인 포함해 지분 33.13%를 보유하고 있는 장형진 고문 측이다.
늘 전체 주주의 비례적 이익 보호를 주창해 온 필자의 관점에서 이 사안이 관심을 끄는 부분은 단연 현 경영진이 회삿돈으로 공개매수를 시도하는 부분이다.
필자는 예전부터 경영진이 회삿돈으로 공개매수를 시도하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해 왔다. 현 경영진을 옹호하는 측은 “회사의 이익을 위한 일이므로 회삿돈을 사용하더라도 배임이 아니며 경영진이 그로 인해 이득을 보더라도 그것은 부수적인 효과일 뿐”이라는 논리를 내세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잘못된 것이며 그나마 이번 사안에는 적용될 수도 없다. 회사의 재산을 유출시키는 것이어서 회사에 중립적이지 않은 데다, 공개매수 대상도 모든 주주가 아니라 소수의 일부 주주만 프리미엄부로 사주는 것이어서 주주에 대해 차별적이고 압박효과(coercion)까지 낳기 때문이다.
‘회사에 이익’이라는 논리를 신뢰하려면 경영진의 이해상충이 해소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해상충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보와 절차를 통제한 채 진행하는 공개매수는 사후적인 재판으로는 그 정당성의 검증과 결과의 복원이 어렵다는 심각한 문제를 유발한다.
회삿돈으로 공개매수를 하는 것이 문제인 이유는 또 있다. 회사가 2.7조원을 차입해 공개매수의 재원을 마련한다는 것인데, 그렇게 하면 그 막대한 원리금 부담의 33%가 분쟁 상대방인 장 고문 측에 전가되는 셈인데 그 자체가 넌센스이다.
두말할 나위 없는 기울어진 운동장, 불공정한 시장이다. 또한 회사 내 막대한 여유재원이 소진되어 앞으로는 배당이나 투자가 지금보다 여의치 않을 테니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회사의 주가는 분쟁 전보다도 떨어질 것이다.
경영권 경쟁을 회삿돈으로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말하자면, 현재 경영권을 차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회사 챤스’를 끌어 쓰는 셈인데, 이것은 결코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사안과 관련하여 많은 시사점을 주는 미국 델라웨어의 판례가 있다. Strassburger v. Earley, 752 A.2d 557(Delaware Court of Chancery, 2000) 판결인데, 회사의 3대주주로서 현직 CEO를 맡고 있던 A가 파산위기에 몰린 1대 주주의 주주환원 요구에 응하여, 회사 자산을 팔아 자사주를 사들임으로써 자신이 1대 주주로 등극한 사안이다.
이에 다른 주주들이 위 자사주 매입에 대해 회사자산의 남용과 주주에 대한 공정 위반이라는 이유로 신인의무 위반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 사안에서 법원은 회사 자금을 전적으로 또는 주로 지배권 유지를 위해 사용한 경우 주식 매입 가격이 적절하더라도 불법이며, 소수주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독립이사 등 경영진의 독립성 절차를 구비하지 못했고, 다른 대안을 진지하게 검토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A의 회사 및 주주에 대한 신인의무 위반을 인정하였다.
이 사안에서도 경영진은 지배권 강화는 부수적 효과일 뿐 주된 목적이 아니라고 주장하였으나 이해상충이 분명하였기에 수용되지 않았다. 우리나라도 이처럼 회삿돈으로 경영진이 경영권을 유지하는 행위에 대하여는 그 이해상충에 관하여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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