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8시 30분. 운영시간 종료를 불과 1시간 30분가량 남겨 놓고 한산한 모습을 보이던 광화문 교보문고에 사람들이 하나 둘 입장하기 시작했다. 방문객들은 하나같이 직원을 붙잡고 “한강 작가의 책은 어디있냐”고 물어보고 있었다. 이날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작품을 구하기 위해 달려온 것이다.
교보문고 측은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을 접하자마자 바로 반응에 나섰다. 교보문고 직원은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나오자마자 급하게 한강 작가의 작품 전용 코너를 만들고 있다”며 “표지판도 출력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10여분 후 표지판이 나오자 사람들은 매대로 몰려 책을 집어가기 시작했다. 일부 손님들은 책을 바라보며 자랑스러운 미소를 짓기도 했다. 매대 가득 놓여있었던 책은 불과 10여분 만에 동이났다.
이날 수상 소식을 듣고 일부러 서점을 방문했다는 40대 이예주 씨는 “영미권이나 유럽권의 문학은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어 자주 수상에 성공했지만, 우리나라 말로 된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만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받아 속상했었다”라며 “한강 작가가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그 한을 씻은 것 같고, 자부심을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역시 뉴스를 접하고 남편과 함께 서점을 찾은 홍예슬(35) 씨는 “외국 서점에 나가면 한강 작가의 책은 꼭 발견할 수 있었어서 인상 깊었다”라며 “한국의 문학이 많이 인정을 받게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일부러 서점을 찾았다”고 말했다.
당초 한강 작가의 수상을 점치는 의견이 적었기 때문에 시민들의 놀라움은 더욱 컸다. 실제 영국의 도박 사이트 나이서오즈(Nicer Odds)의 노벨문학상 베팅 1위는 중국의 찬쉐 작가였다. 국내 온라인 서점업체 예스24 역시 앞서 노벨문학상 수상 기대작가 1순위로 찬쉐를 꼽기도 했다.
이날 오후 8시 45분께 광화문 교보문고를 찾은 30대 여성 박 모 씨는 “노벨문학상 후보 리스트가 있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수상을 크게 기대한 것은 아니다”라며 “외국에 출장을 갔을 때 한강 작가의 작품인 ‘흰’이 번역돼 서점에 진열된 모습을 봐 인상적이었는데, 이번에 수상에 성공해서 감동 받았다”고 말했다. 김 씨의 손에는 한강 작가의 대표작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가 들려있었다.
특히 이번 수상 소식이 들리자 국어국문계도 환영하고 있다. 국어교사로 재직하고 있는 남현주(28) 씨는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사회적인 폭력, 역사적인 트라우마 등을 주제로 한 혁신적인 작품이 전세계에 알려져 기쁘다”고 말했다. 국문과 대학원생인 손민정(24)씨는 "한강 작가의 수상이 아시아 여성 최초인 점도, 광주 5.18과 제주 4.3 사건을 그린 작가가 수상해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적 사건들이 세계적으로 중요성을 인정받았다는 점도 좋다"고 말했다.
한강 작가의 수상이 최근 불황을 겪고 있는 국내 서점업계에 단비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 실제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발간한 ‘2024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서점 개수는 2484개로, 2022년 2528개 대비 1.7%가량 줄어드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서점가에서는 한강 작가의 수상으로 독서에 관심을 가지는 독자가 늘어나기를 기대하고 있는 눈치다.
30대 박 모 씨는 “최근 ‘텍스트 힙’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독서가 많은 사람들에게 힙한 취미로 관심 받으면 좋겠다”라며 “향후에도 한국 문학이 더 성장해 2번 째, 3번 째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10일(현지시간) 스웨덴 한림원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 작가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한림원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의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한강 작가는 1970년 11월 전라남도 광주에서 소설가 한승원의 딸로 태어난 그는 이후 서울로 올라와 풍문여고를 거쳐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이후 지난 2016년 '채식주의자'로 세계적 권위의 맨부커상에서 영연방 이외 지역 작가에게 주는 인터내셔널 부문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하기도 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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