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깜짝 뉴스였지만 그렇다고 기대가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한강은 앞서 2016년 ‘채식주의자’로 영국 인터내셔널 부커상, 2017년 ‘소년이 온다’로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 2023년 ‘작별하지 않는다’로 프랑스 메디치 문학상을 각각 수상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이미 그의 작품은 40여 개국에 번역 판권이 판매된 상태다.
한강은 최대한 중성적인 시선으로 인류 사회의 비극을 예리하게 주시하고 그 속의 고통과 혐오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인물들의 모습을 조명해 왔다. 그러면서도 깊은 슬픔을 자아내고 생명에 대한 사랑과 연민, 그리고 그리움의 정서를 불러일으켰다.
한강은 한 인터뷰에서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서울로 이사한 뒤 아버지 한승원이 1980년 5월 광주에서 학살된 이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첩을 보여주며 “열세 살 때 본 그 사진첩은 내가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된 비밀스러운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그를 세계적으로 알린 작품은 ‘채식주의자’다. 세 편의 연작 소설로 이뤄진 이 소설은 영혜를 둘러싼 인물인 남편·형부·언니의 시선에서 각각 서술하는 다면적인 면모를 보인다. 어린 시절 폭력의 트라우마로 육식을 거부하게 된 여자가 극단적인 채식을 하면서 나무가 되기를 꿈꾸며 죽음에 다가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부커상을 받은 이 소설을 통해 인간의 욕망이라는 보편적 주제에 몰입하며 언어와 소재의 한계로 변방에 불과했던 한국 문학의 특수성에서 벗어나 세계 문학의 주류로 편입시키는 쾌거를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의 비극을 세 여성의 시선으로 풀어냈다. 소설가인 주인공 경하가 사고를 당해 입원한 친구 인선의 제주도 빈집에 내려가서 인선 어머니의 기억에 의존한 아픈 과거사를 되짚는 내용을 담았다.
책은 4·3 학살 이후 실종된 가족을 찾기 위한 생존자의 길고 고요한 투쟁의 서사가 담겼다. 공간적으로는 제주에서 경산에 이르고, 시간상으로는 반세기를 넘긴다. 폭력에 훼손되고 공포에 짓눌려도 인간은 포기하지 않는 것, 즉, 작별할 수 없다는 의지를 오롯이 드러낸 작품이다. 한강은 제목 ‘작별하지 않는다’의 의미에 대해 “작별하지 않겠다는 각오라고 생각했다”면서 “어떤 것도 종결하지 않겠다는 그것이, 사랑이든 애도든 끝내지 않고 끝까지 끌어안고 가겠다는 결의라고 생각했다”고 말한 바 있다.
‘소년이 온다’도 그런 비극의 연장선에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계엄군에 맞서다 죽음을 맞은 중학생과 주변 인물의 참혹한 운명을 그렸다.
한강의 또 다른 특징이 드러나는 작품은 ‘흰’이다. 결코 더럽혀지지 않는, 절대로 더럽혀질 수가 없는 어떤 흰 것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이면서 시 성격도 지닌 이 작품은 강보·배내옷·소금·눈·달·쌀·파도 등 세상의 흰 것들에 관해 쓴 65편의 짧은 글을 묶은 책이다.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숨을 거둔, 작가의 친언니였던 아기 이야기에서 출발해 삶과 죽음에 관한 깊은 성찰을 담았다.
스웨덴 아카데미는 10일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로 “한강은 자신의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에 맞서고 각 작품에서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한다”며 “그녀는 신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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