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탄소도시에 대한 지난 레터를 많은 용사님들이 좋아해 주셨습니다. 숨만 쉬어도 고탄소인 도시보다는 느리더라도 착한 동네에서의 삶을 꿈꾸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더 자세한 이야기로 돌아왔습니다. 그린피스의 저탄소 도시생활 프로젝트 2탄으로 찾아간, 수원 행궁동 이야기입니다. 30명의 시민들이 참여해 저탄소도시를 잠깐이나마 체험했습니다.
자동차 없이 ‘한달살이’ 해 봤더니…
수원은 지난 2013년에 자치단체국제환경협의회(ICLEI), 유엔 인간정주위원회 (유엔 해비타트)와 함께 '생태교통 축제'를 연 적이 있습니다. 자전거 같은 친환경 교통수단만을 이용해서 한 달을 살아보는 세계 최초의 실험이었습니다. 행궁동 2200여 가구 주민들이 대부분 자발적으로 참여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한 달 동안 34만㎡ 면적의 구도심에서 1500여대의 차가 사라져서 도보와 자전거를 위한 거리가 됐습니다.
수원시와 행궁동은 이후 10년 동안 50회 넘게 '자동차 없는 날'을 정해 실천해 왔습니다. 올해는 시범 사업으로 10~12월에 주말·공휴일 오후 1~6시에 핫플 '행리단길'에서 차 없는 거리를 운영하고 있고, 내년 1월부터는 아예 정례화하려고 논의 중입니다. 옛스러운데 예쁘면서도 아늑한 행궁동다운 행보입니다.
처음에는 인근 상인 분들이 장사가 안 될까봐 반대하셨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동의하는 분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주민들이 보기에도, 놀러온 분들이 보기에도 좋았기 때문이겠죠. ICLEI 한국사무소장이시기도 한 박연희 수원 행궁동 주민 자치위원님은 "시간대별 카드 소비액을 분석했더니 차 없는 거리를 시행하는 오후 1시~6시의 비중이 48.9%로 가장 많은 소비가 발생했다"고 전해주셨습니다.
반발·민원 차근차근 설득한 비결
그냥 차만 없앤 건 아닙니다. 누구나 편하게 거리를 걸을 수 있도록, 인도와 차도의 단차를 없애고 휠체어·유아차도 이동하기 쉬운 소재로 바닥을 정리했습니다. 골목 곳곳의 화단과 화분은 주차를 막기 위한 목적이기도 하지만, 일단 이쁘고 마음도 확 편해집니다. 차가 없는 공간은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꿨습니다. 배드민턴도 치고, 종종 공연도 열리도록 말입니다. 택배는 행궁동 주민자치회 사무소에서 받아뒀다가 전기차로 배송한다고 합니다.
제한적인 '차 없는 거리'가 아닌, 완전히 '차 없는 마을'을 만들기 위한 앞으로의 과제는 이동수단 개선입니다. 대중교통 시스템이 더 편리하게 잘 갖춰져야 할 겁니다.
마지막으로 박연희 소장님의 말씀을 일부 남겨봅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공동체에 대한 의지와 희망이 담겨 있어서 꼭 공유해야겠다 싶었습니다.
"10년 전이면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이 낮을 때라서, 많은 노력과 예산(수원시 100억 원, 이 중 80억 원은 마을 시설 개선에 사용)을 투입했습니다. 이 사업에 예산을 쓰면 자동차 도로 정비 같은 데 못 쓰니까 주민들의 반발과 민원도 심했고요. 그래서 골목마다 다니면서 모든 과정을 설명하고 설득했어요. 덕분에 차 없는 거리를 실시한 9월 1일 자정부터 동네에 차가 하나도 없었죠. 차가 없을 때 도시의 경관이 어떻게 바뀔지 보여주기 위해서 지역의 자치, 예술 등 여러 그룹들이 공간을 활용해서 잘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해외에는 보행 도시를 만들기 위한 기본 계획이 있는 곳이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자동차가 아니라 사람이 우선이 될 수 있는지, 사람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을지 제도 구상에 반영해야 하죠. 스쿨존처럼 홈존을 지정할 수도 있고요. 시속 10km 이하여야 소음 피해가 줄어들고, 4 km 이하여야 안전한 자전거 이용과 보행이 가능해집니다.
이런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선 일상의 어려움을 나눌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는 그룹이 활성화돼야 합니다. 아파트 한 단지만 해도 여러 그룹이 있는데, 이런 그룹들이 우리 생태를 새로운 눈으로 보고 논의할 수 있어야 하죠. 어렵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소통할 수 있는, 의사결정권한을 가진 그룹이 있는지 확인하고, 정책결정자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생각하고 물어보는 시민이 많아진다면 변화가 가능해요.
그리고 행궁동에는 고령 인구가 많습니다. 옛 시대를 지난 어른이자 기득권층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많이 느끼시더라고요. 한 번 한 약속은 지키려는 마음, 필요한 곳에는 후하게 지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계셔서 힘을 모아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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