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 소설은 버릴 게 하나도 없다.”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85)은 11일 “세상이 발칵 뒤집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며 기쁨을 표출했다. 한 작가는 “(딸 한강이) 발표 직전인 오후 7시 50분께 스웨덴에서 전화가 와 수상 소식을 접했다”며 “본인도 실감이 안 나는 느낌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한 작가는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노벨위원회가) 뜻밖의 인물을 찾아내 수상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지만 뜻밖에 우리 강이가 탈지도 몰라 만에 하나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어도 전혀 기대를 안 했다”면서도 “(아내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상을 타면 좋지 않겠나 하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고 말했다.
한승원은 과거에 딸에 대해 “그 사람의 언어와 내 언어는 다르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 ‘희랍어 시간’을 읽어보면 시적인 감성이 승화된다”고 평한 바 있다. 또한 “어떤 때는 한강이 쓴 문장을 보며 깜짝 놀라 질투심이 동한다”고 털어놓은 일도 있다. 한강이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에 두 번째로 올랐을 때는 “강이가 나를 진작 뛰어넘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을 낮추고 자신과 비교하며 딸에 대한 높은 긍지와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는 “나는 써서는 안 되는 대중적인 소설을 많이 쓰면서 밥벌이에 이용했고, 어설퍼서 버리고 싶고 내세우고 싶지 않은 저술이 더러 있다”며 “내 소설과 강이 소설을 비춰 보면, 강이 소설은 버릴 게 없고 하나하나가 명작들”이라고 말했다. 또 “고슴도치는 내 새끼가 예쁘다고 그래서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라며 영국 맨부커상을 수상한 ‘채식주의자’를 언급했다. 그는 “그때부터 강이가 특별한 의미를 가진 작가라고 생각했다”며 “다음 작품인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까지 5·18광주민주화운동과 제주4·3 사건이 연결되면서 국가의 폭력과 세상으로부터 트라우마를 느끼는 여린 인간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사랑이 끈끈하게 묻어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1939년 전라남도 장흥 태생인 한승원은 장편소설 ‘아제아제바라아제’ ‘초의’ ‘달개비꽃 엄마’ 등을 집필한 원로 작가다. 당초 한강은 11일 오전 언론 기자회견을 할 것으로 전해졌으나 기자회견은 하지 않았다. 한승원은 11일 자신의 작업실 해산토굴(海山土窟)을 찾은 기자들에게 “저는 딸에게 국내 문학사 중 하나를 선택해 기자회견장을 마련해 회견을 하라고 했지만 아침에 생각이 바뀌었더라”며 딸 대신 상황을 전달했다.
한강은 한승원에게 “러시아·우크라이나·이스라엘 등 전쟁이 치열해서 날마다 모든 죽음이 실려 나가는 상황에서 ‘잔치’를 할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승원은 “그새 한국 안에 사는 작가로의 생각이 아니라 글로벌적으로 감각이 바뀌어 있었다”며 대신 소감을 전하는 상황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